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 57일차. 힘들 땐 쉬어가세요, 푸른수목원/ 항동 철길

문쌤 2022. 11. 11. 23:59


가을, 단풍, 낙엽
낭만 가득한 단어들이지만 누군가에겐 힘든 노동의 계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독 나무가 많은 우리 아파트.
봄꽃이 피면서부터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여름이면 깊은 초록의 세계로 그리고 가을엔 빨갛게 노랗게 물든 나뭇잎.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을 보며 깊어가는 가을을 감상하지만 누군가에겐 치워야 할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군인들이 눈 오는 날을 싫어하는 것과 같달까?

아파트를 나서는데 경비아저씨가 낙엽 청소를 하고 계셨다.
낙엽이 많아도 너무 많다. 돌돌이 청소기처럼 생겼는데(이름을 모름) 기능은 선풍기인 기계를 들고 다니며 낙엽을 화단 쪽으로 날리고(?) 계셨다.

만추(晩秋).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느끼고 싶은데 아저씨는 본인 업무다 보니 하나의 낙엽도 그냥 두지 않고 모조리 화단 쪽으로 깨끗이 날려버렸다.

무심코 나무 위를 쳐다봤다.

우와~ 나뭇잎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듯 낙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저씨의 낙엽 쓸기 작업은 계속 되겠지.

비라도 내리면 젖은 낙엽 때문에 주민들이 미끄러질 수도 있는 불상사를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낙엽 쓸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겠구나.

경비 아저씨의 낙엽 쓸기 노동을 보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늦가을 단풍을 보러 푸른수목원을 찾아갔다.



거리가 가까워 인천 어디쯤이겠지 생각했는데 주소는 서울특별시다.

지리를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지하철역 이름으로만 봐도 인천 부평을 지나 부천까지 지나고서야 푸른수목원에 도착했다.

왠지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이쪽은 인천, 저쪽은 경기도 또 그쪽은 서울... 뭐 그런 거 아닐까 싶다.(시골사람 생각 ^^)

쉬어가는 길, 항동 철길


푸른수목원으로 바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주차장 바로 앞에 항동 철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푸른수목원에 가면 항동 철길을 꼭 걸어봐야 한다는 말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 항동 철길 이야기 〓

대한민국 근현대 산업 부흥의 기반이었던 오류선이 '항동 철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류역에서 부천 옥길동을 잇는 4,5km의 오류동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료회사인 경기화학공업 회사가 부천시 옥길동에 공장을 지으면서 원료와 생산품을 운송하기 위해 1957년 착공, 1959년에 준공한 단선철도다.

오류동선은 삼천리 연탄, 대원강업, 일신제강(동부제강) 등의 화물수송을 담당했으며 전성기에는 하루에 여러 번씩 화물열차가 운행되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흔적이다.

현재는 경기화학공업의 폐쇄로 화물수송 열차 운행은 중단되었고 군수품을 수송하는 철로로 이용되고 있다.

오늘날 항동 철길은 시민들에게 힐링의 장소, 사진작가들의 출사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회자되며 시민들에게 추억과 낭만을 선사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길.
철길을 걷는 사람들 중 누가 봐도 관광객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역 주민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거나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다.

항동 철길이 처음인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거나 철길에 적힌 글귀 따위엔 관심없다. 오직 바쁘게 걸을 뿐이었다.

음... 늘 보는 거라 감흥이 없을 수도...

저 멀리 빨간색 옷을 입고 철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색깔이지만 빨간색 한 점 들어간 뒷모습 사진이 예쁠 것 같아서 부지런히 따라갔다.

머릿속에 상상하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는데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은 이미 철길을 벗어난 상태였다.
아이고~ ㅎㅎㅎ


철길을 걷다가 뜻밖에 좋은 글귀를 만났다.


"힘들 땐 쉬어가세요"


이 글을 만나고 한참을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래, 나에게 하는 말이지?

아니, 지금 힘든 모든 이에게 하는 말이야.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땐 너무 애쓰지 말고 쉬어가라고...



이 글귀 외에도 마음을 심쿵! 내려앉게 만드는 글귀가 계속 이어졌다.

"너라서 아름다운걸"


연인들을 위한 배려다.
어느 글귀를 선택했는지는, 누구와 함께 했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도심 속의 휴식 공간, 푸른 수목원


며칠 전 소개했던 '걷기의 세계' 내용 중 도시 설계자 제프 스펙(Jeff Speck)이 한 말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데 오늘도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살기 좋은 도시들의 가장 큰 장점은 걷기 좋다는 것이다"

도심 속 휴식 공간, 도시의 한가운데 수목원이 있다니, 집 가까이 대형병원이 있는 것보다 더 부럽다.


〓 푸른수목원 〓

푸른수목원은 2009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3년 개원한 서울특별시 제1호 공립수목원이다. 200,956㎡(60,789평) 부지에 20개의 주제 정원과 KB숲교육센터(전시온실), 북카페, 안내센터 등이 있으며 약 1,380여 종의 국내 자생식물과 다양한 세계의 식물을 전시, 교육, 연구 및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푸른수목원 확장구간 편입에 따라 기존 수목원은 식물 보전과 전시기능을 갖춘 공립수목원의 기능을 유지하고 확장부지는 근린공원의 복합적 기능을 이원화하여 운영·관리하고 있다.


항동 철길을 먼저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푸른수목원 유리 온실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KB금융그룹의 후원으로 건립된 초승달 모양의 유리 온실은 전 세계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환경 배움터이다.


그야말로 '온실 속의 화초'다. 가녀린 모습으로 매달려 있는 꽃송이가 아슬아슬해 보인다.

혹시 실수로 뒤돌아 서다 연약한 꽃송이 건들까 봐 조심스럽게 구경했다.


원래는 물이 흐르고 있었을 텐데 가물어서 바짝 말라있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던데 좀 해갈되지 않을까 싶다.


입동도 지났건만 이렇게 붉은 단풍이 우아하게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도 되는가.

왼쪽 부분을 일부러 비껴서 찍었는데 젊은 청춘 남녀가 알콩달콩 사진 찍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한참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단풍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추억을 쌓느라 비켜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 붉은 단풍나무 옆으로 더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에게 양보하고 그들이 버린(?) 그러나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단풍나무 한 컷!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꽃(?), 멀리서 봤을 땐 흰 국화인가 싶었다. 사람들은 '조화'일 거라고 말했지만 조화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름을 모르니 그대 이름을 불러줄 수가 없구나...


다양한 수생 식물이 자라고 있는 항동 저수지.
저수지 위에 데크 길을 만들어 더 가까운 곳에서 수생 식물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데크 옆 벤치에 앉아 다시 한번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에 대해 생각을 했다.

일부러 멋있어 보이려고 생각하는 척한 게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듯하다.


어린이 정원.
빗자루 타고 가는 마녀가 있다니 ㅎㅎㅎ
어린이들이 숲과 친해질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오후에 가서 한참 걷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라 오히려 사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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