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장봉도 섬 트레킹을 한 이유를 들자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꼭 장봉도 국사봉, 가막머리 전망대 트레킹을 해보고 싶었던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이웃님으로부터 '산에서 먹는 컵라면과 맥주'가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추위를 워낙 싫어하는데 반짝 따뜻한 날씨여서 트레킹에 필요한 모든 핑계가 다 갖춰졌다.
그러니 요가 정도는 눈 딱 감고 결석하고 아침 일찍 삼목선착장으로 향했다.
장봉도에서 신나게 걸어보자, 쓔슝~^^

=장봉도 트레킹=
▶1코스 신선놀이길 8.21km
등산로 입구 - 상산봉 - 말문고개(구름다리) - 국사봉 - 헬기장 - 장봉3리 팔각정
▶2코스 하늘나들길 3.2km
장봉3리 팔각정 - 봉화산(봉화대) - 장봉도 능선길 - 가막머리전망대
▶3코스 구비너머길 4.03km
장봉3리 팔각정 - 석산터
▶4코스 장봉해안길 3.92km
축동 버스정류장 - 유노골(윤옥골) - 쪽쪽골 - 해안 기암괴석 - 가막머리 전망대
▶5코스 야달인어길 4.62km
장봉치안센터 팔각정 - 야달 선착장 - 강구지 - 건어장 해변 - 축동 버스정류장
▶6코스 한들해안길 3.55km
능선길 구름달 - 제비우물 - 한들해변 - 다락지구 전망대 - 장봉치안센터 팔각정
▶7코스 장봉보물길 4.4km
진촌마을 - 장술과 뿌리 - 뒷장술 - 혜림원 둘레길


11월 22일.
세종7호 9시 승선권을 출발 2분 전에 구입했다.
아무리 바빠도 기념사진은 포기할 수 없겠지?
승선권 인증 찰칵~!


새우과자 줄만한 관광객이 없다는 걸 알아챈 걸까?
갈매기가 한꺼번에 날아들어 색다른 장관을 이루던 때와 달리 오늘은 한 마리도 없다.
기온이 상승할 거라는 예보와 달리 아침엔 을씨년스러운 바다 풍경 때문에 장봉도에서의 하루 일정이 살짝 걱정되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만나게 되는 인어공주.
날씨가 맑으면 반짝이는 비늘처럼 보이는데 오늘은 궂은 탓에 인어공주의 미모가 돋보이지 않는다.

장봉도관관안내소에서 지도 한 장 얻으려고 했는데 지도가 다 떨어졌다며 책상 위에 있는 지도를 휴대폰으로 찍어가라고 했다.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건어장 버스종점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만 장봉도 1코스(등산로 입구 - 상산봉 - 말문고개 - 국사봉 - 장봉3리)를 걷고 트레킹을 끝마칠지 아니면 2코스 (장봉3리 - 봉화대 - 장봉도 능선길 - 가막머리전망대)를 지나 해안길 따라 건어장해변까지 걸을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데다 나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나도 모르는 상태여서 일단 1코스 걸어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등산로에 진입하자마자 이곳이 섬인가 싶을 정도로 온화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섬 트레킹, 그중 장봉도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산악회 리본도 많아 길 잃을 일은 없겠다.
다만 섬 트레킹이라고 해서 고개만 돌리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나무가 우거져서 기대하는 전망은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산행의 묘미겠지?
아직까지는 발걸음이 가벼워서 거뜬하다.
조금씩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오늘의 운세를 안 봤지만 왠지 오늘 산행이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 같다^^


인천둘레길 16코스 상산봉에 도착했다.
공식 스탬프북이 없지만 배낭 안에 있는 수첩에 스탬프를 찍었다.
그런데 절반만 찍혔다?
아~ 잉크가 없다.
이후에도 둘레길 스탬프함을 만났는데 관리가 부실해서 '진심을 다해'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 같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바람이 불어'의 첫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위가 고요해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심심하니까 이런 영상도 찍으며 걸었다.
내가 봐도 너무 잘 걷는다^^


산을 오른 후 처음으로 도로로 내려왔다. 혜림원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누군가 팻말 아래에서 뭔가를 캐고 계셔서 물었더니 '칸나'란다.
여름날 붉은 꽃으로 혜림원 어귀를 빛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혜림원 선생님인 그는 "내년에 다시 심기 위해 구근을 정리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소원 돌탑에 돌 하나 올리고 날아가는 비행기 잡기(?)도 했다.
등산객이 없어서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제법 크게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음치인 것을 들킬 일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그리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주변 소리를 못 듣고 행여 있을지 모를 일에 대해 민감한데 반해 이어폰 없이 음악을 들으면 걱정으로부터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다른 지역보다 느리게 봄이 찾아오는 장봉도.
4월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장봉벚꽃길'로 유명한 구름다리를 지났다.
구름다리에서부터 말문고개까지 펼쳐진 800여 미터 벚꽃길은 너무 유명해서 벚꽃이 피는 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흐릿한 바다 색깔과 같아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사진만 찍고 통과~!

그 어떤 안내 팻말도 없는 두 개의 갈림길.
어떤 길로 가야 할까?
나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장봉도 섬 트레킹은 의외로 비행기와 친구 삼아 걷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체감상 1분에 한 대 정도 지나가는 것 같다.
지난주 목요일에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수능날 영어듣기평가 시간에 모든 비행기 이착륙 금지 또는 조정이다.
그런 조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 장봉도에서 경험해 보라고 하고 싶다.
수능 영어듣기평가 시간에 왜 그런 조치를 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장봉도무장애숲길(말문고개) 입구에 커다란 벚꽃나무가 있는데, 봄이면 바다를 배경으로 벚꽃 아래에서 찍는 사진은 그야말로 인생 사진이다.


국사봉 도착(150.3m)
근사한 모습으로 반겨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박하다.

산에서 먹는 컵라면이 그렇게 맛있다지?
지난봄, 생수 한 병 없이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보러 갔을 때 산행 중에 너무 목마르고 배고팠다.
준비 없는 산행도 처음이었지만 배고픈 거지가 된 것도 처음이었다.
진달래 만발한 고려산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어느 부부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 맛있어 보였다.
그 라면을 드디어 장봉도 국사봉에서 먹게 된 것이다.
(이웃님~ 보고 계신가요? 맥주 마시면 쓰러져서 헬기 타야 할 것 같아 맥주는 생략했어요~^^)
꿀맛 인정~!!!




화장실 때문에 장봉3리 마을로 내려갔다. 여기서 트레킹을 마칠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기엔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체력도 괜찮다. 그리고 배낭엔 먹을거리가 아직 남았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한 후 마을에서 다시 가막머리전망대 오르는 길로 들어섰다.


팔각정에 있는 3코스 구비너머길 스탬프함.
전혀 관리가 안 되고 있는 듯하다.


또 안내 표시 없는 두 개의 길 앞에 섰다.
왼쪽 산길로 갈까 오른쪽 평지로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잠깐 산길을 걸어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오른쪽 길을 걷기로 했다.

봉수대 도착.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스탬프함...
아무것도 찍히지 않는다;;

두근두근~
가막머리 전망대 도착했다.
이제 막 썰물이 진행 중이어서 장봉도의 자랑인 풀등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맑은 하늘빛인가 싶더니 하필 가막머리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잿빛으로 변한 하늘을 아쉬워하며 그와중에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눈을 감으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
갈잎이 흔들리는 소리,
비행기 소리 잦아든 바다의 깊은 파도소리.
나무에 기대어 차라리 눕고 싶은 욕심이라니...
확 트인 전망은 가히 장봉도 해넘이 명소로 불릴만했다.


이제부터 멋진 해안길이 펼쳐졌다.
하지만 위험한 구간이 많아 경치에 들떠있다가 긴장하며 걸어야 했다.


쪽쪽골을 지나니 안전을 위한 밧줄은 바다를 향해 마지막 점을 찍고 끝났다.
안내 문구나 팻말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썰물 시간이긴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을 잘 몰라서 차라리 안전하다고 생각한 산길을 택했다.
이때 그냥 바다 해안길을 걸었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산길로 오른 탓에 체력은 고갈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건어장해변 버스 종점 도착
앗!!!
1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해안절벽길을 걸었다면 좋았을 것을 괜히 고개 하나를 더 넘다니, 체력이 남아돌았나 보다^^
'아름다운 여행은 타인의 인스타그램에만 존재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어느 길을 걸어도 좋을 트레킹 천국 장봉도!
2023년 걸었던 길 중 가장 길었지만 의미 또한 남달랐다.
아름다운 여행의 시작 장봉도,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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