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88일차. 당신의 발목은 안녕하십니까.

문쌤 2022. 12. 12. 23:30


추운 겨울이지만 여전히 반팔 차림(요가하면 땀이 남) 위에 검정색 롱패딩을 입고 요가교실에 간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영화 록키의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복싱 선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약도 없다는 불치병인가?? ^^

오늘 아침에 요가교실 가는 중 복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바지가 어정쩡한 길이인 데다 짧은 요가 양말에 운동화를 신었더니 맨살인 발목을 드러내고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맨발에 슬리퍼 신고 다니는데 이 정도쯤이야.

이 정도쯤이야?????

Oh, Nooooo!!!




이팔청춘도 아닌데 강추위에 발목을 드러내고 다니다니!!!
마치 살을 에는 듯한 느낌이었다. 발목이 얼음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랄까?


궁금해졌다.(요가 수업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니, 칭찬해~^^)

'이렇게 추운데 지금도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발목만 노출됐는데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발바닥이 차가운 땅에 닿으면 어떨까?'

어떤 자료를 보면, 추울 때 맨발 걷기를 하면 더 효과적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겨울에 맨발 걷기 했다가 동상 걸렸다는 경우도 있어서 맨발 걷기의 효과를 믿으며 실천하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물론, 오늘의 걷기도 하면서 ^^


내가 직접 본 맨발 걷기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관모산서울식물원인데 그중 서울식물원을 가보기로 했다.
(관모산은... 음... 오늘은 산에 올라가기 싫었음 ㅎㅎ 만약 오늘 관모산 갔다면 지난번에 이어 또 비 오는 날에만 관모산에 올라가는 특이한 추억으로 남을 뻔~!)

오후에 집을 나설 때 하늘이 너무 하얘서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왜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릴 거라고는 1도 의심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

오늘도 걷는다, 서울식물원

마곡나루 역에서 내려 서울식물원으로 갔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서울식물원의 가장 바깥쪽 산책길을 걸어야 하지만 오늘은 맨발 걷기 구간으로 곧장 걸어갔다.

가는 동안 비인지 눈인지 모를 미세한 뭔가가 내렸다.
그 정도 내리는 양이라면 우산이 없어도 걸을만했다.


맨발 걷기 구간에 다다르자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신발을 신고 걷고 있었다.
맨발 걷기 구간을 끝까지 걸어갔지만 맨발로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가을 중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맨발 걷기에 더없이 좋았을 테지만 살을 에는 추위엔 장사 없다.
오히려 건강을 위해서 겨울엔 자제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겨울이야말로 맨발로 걷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의 뜻도 존중한다.


서울식물원 맨발 걷기 구간을 포함해서 호수 한 바퀴 도는 동안 비는 그치는 듯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안 가 본 '습지원'을 가보기로 했다.

서울식물원 호수원과 습지원 사이에 있는 양천로 아래 넓은 공간엔 벤치가 있어 항상 사람들이 많은데 추워서 그런지 텅 비었다. 이곳 벤치는 더운 날 에어컨 켠 카페보다 더 시원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계절의 습지원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으나 겨울의 습지원은 호수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설명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은 빗물을 일시적으로 모아 두었다가 바깥 수위가 낮아진 후 방류하기 위한 저류지인데 마곡지구 개발 전 서식한 큰기러기 등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여 줄, 마름, 갈대 등 식이식물을 식재하고 서식환경에 맞춰 지형을 조성한 곳이다.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고 이름 모르는 겨울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나만 몰랐을 뿐 비 오는 날에도 이곳까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서울식물원에서 온실만 보고 간다면 서울식물원의 10%도 안 본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늘 새롭다.


서울식물원이 자리한 마곡 일대가 과거 논이었던 탓에 다양한 양서 파충류와 조류, 곤충 등이 관찰되고 있는데 그중 주요 조류의 특색을 적은 자료가 데크길에 부착되어 있어 걸으면서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중 '왜가리'는 직접 눈으로 본 적 없지만 왠지 정겹다.

왜가리야 왜
어디 가니 왜

이렇게 시작하는 '왜가리' 시(詩) 때문이다.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동화처럼 '왜가리' 시 역시 작자미상의 동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박경종 시인의 시이며 내용도 잘 못 알고 있었다.


왜가리야!
왝!

어디 가니!
왝!

엄마 찾니?
왝!

아빠 찾니?
왝!

왜 말을 않고 대답만 하니?
왝!

........,
왝!

(반전은, 박경종 시인의 시 "왜가리"는 1935년 작품이며 처음에 쓴 시는 현재 표현과 조금 다르다는 것.)

"왜가리" 그림만 보고 '왜가리' 동시가 떠올라 혼자 피식거리며 걸었다.(혼자서도 잘 노는 편)

이때 비가 점점 많이 내렸다지...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
렌즈에 빗물이 묻어서 잘 안 보였지만 맑은 날엔 조류 관찰이 가능하겠다.
그런데 거리가 가까워서 그냥 봐도 다 보이더라는~ ^^


금방 그칠 비가 아닌 듯했다. 옷이 다 젖어서 더 머무를 수 없었다.
걸음을 멈추면 추위가 엄습해와서 지하철역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우산 없이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비마저 그들의 의지를 꺾지 못하는 듯...(나는 꺾였다고 전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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