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일상 이야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하소연

문쌤 2023. 1. 4. 23:58


지난 6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10시면 언제나 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보기와 달리(달리??? 보기엔 그렇지 않다는 뜻^^) 워낙 몸이 뻣뻣해서 몸으로 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다가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하지만 예의는 예의일 뿐, 나 뿐아니라 나보다 더 오랫동안 배운 회원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 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마음 속  한켠에 도사리고 있다.

 

출처: 경희대요가필라테스


우리 나이 대가 그렇듯 몸매를 위해 요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깨가 아파서, 허리가 아파서, 다리에 쥐가 잘 나서... 등등 움직이는 종합병원급이다 보니 요가 선생님은 회원들의 신체를 파악한 후 거의 재활훈련에 가까운 요가 동작을 많이 가르쳐 주신다.(너무 힘들다는 얘기;;)

 


금요일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캘리그라피 교실에서는 나에게 댄스를 같이 배우자고 권하기도 하고 서예를 같이 배우자고 푸시하는 분도 있다.

그럴 때마다
"댄스는 몸치여서 못해요"
"요가 배우시면 저도 서예 배울게요"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 줄 그땐 미처 몰랐다.


그러니까 지난 12월 셋 째주.
월요일 아침부터 2023년 프로그램 접수하는 날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요가 교실에 도착했으나 다른 요가 회원들은 이미 접수를 마친 상태였다.(난 이곳의 룰을 몰랐음)

한 회원이 나에게 말했다.
"신청서 이미 다 떨어졌어요"

정원 10명에 신청서 10장 배부됐는데 이미 다 나가고 없다는 것이다.
그날따라 결석한 회원이 있어서 남아야 정상인데 신청서가 없다니... 그리고 나는 아직 접수를 하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아, 나의 요가 인생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리는 건가?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니 현재 신청서는 9장만 들어왔단다.
그럼 나머지 1장은 어디에???

사무실 담당 직원은
"10시 수업 신청서는 없지만 다행히 11시 수업 신청서는 남아있으니 접수하라"고 했다.
마지못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10시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11시 요가 수업을 기다리는 회원들이 문 앞에 있기 때문에 항상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좀 머뭇거려진다.
10시 요가 회원들이 순한 맛이라면 11시 반 회원들은 매운맛이다.

하늘높이 솟아있는 머리 뽕, 진한 화장, 블링블링한 의상, 화려한 순금의 향연들...
특히 쎈언니의 전매특허인 언더라인 문신은 누구라도 기죽을 수밖에 없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쎈 캐릭터들이다.


드디어 지난 월요일 첫 수업.
그나마 6개월 동안 겨우 얼굴 트고 (비록 마스크는 가렸지만) 함께 운동하던 정든 회원들은 교실 안에 있고,
나는 쎈 캐릭터들과 교실 밖에서 10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아침 드라마' 한 편이 생방송 중이었다.
TV에서 하는 아침드라마가 아니다.
이웃집 누구, 친척 누구 등등이 등장하며 으레 아침드라마 단골 메뉴인 바람, 출생의 비밀 등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현실판 아침 드라마다.

수요일(오늘) 아침엔 또 다른 어떤 못된 며느리가 등장하고, 부모 재산 빼앗아 간 나쁜 자식 얘기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보태며 또 한 편의 아침 드라마가 절찬 상영 중이다.

아침 드라마 작가가 작품을 못 쓰고 고민하고 있다면 꼭 와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불과 10분 정도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운동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다시 월요일 첫 수업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10시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회원들을 보니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캘리그라피 교실에서 내 옆에 앉은 두 사람이 요가 수업을 등록한 것이다.
9시 전부터 사무실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 열자마자 접수했단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신청서가 없었던 거야...

요가 수업 같이 하자고 부추겼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ㅎㅎㅎ

나는 쎈캐 언니들(언니 아니어도 쎈캐는 다 언니임^^)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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