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마니산 정상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마니산 자락에 있는 정수사에 다녀오는 걸로 마니산에 신고식을 치르려고 한다.
강화터미널에서 41번 버스 타고 정수사 입구에서 하차했다.
으레 절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산채 비빔밥이나 도토리묵을 파는 식당은 전혀 없다.
편의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정수사를 향해 수행하듯 걸어서 1km 올라가면 된다.
정수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다.
빨리 올라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 빨리 걷다가 숨이 차서 헉헉 댔다.
마스크를 벗으면 찬 겨울 공기가 콧 속으로 그리고 폐 깊숙이 들어왔다.
숲 속 특유의 향기가 휘감고 돌며 딱딱한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한다.
쭉 뻗은 나뭇가지, 일부러 미적 감각을 발휘해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바위, 수북이 쌓인 낙엽...
앙상하게 메마른 나무가 오히려 한 폭의 잘 짜여진 그림 같다.
유난히 바위가 많다. 그것도 커다란.
마니산에는 암반능선이 있다는데 '이렇게 생겼단다'하며 보여주려는 걸까?
정수사 입구 도착.
차량이 출입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지만 바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돌계단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쉬었다 올라가려고 앉았다.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니 인적 하나 없는 고즈넉한 겨울산 풍경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돌계단에 오랫동안 앉아있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곳이다.
너무 높아요~;;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懷正) 대사가 정수사(精修寺)라는 이름으로 건립했다.
또 세종 8년(1426)에 함허(涵噓) 대사가 절 이름을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고, 대웅보전은 원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인데 앞쪽에 별도로 측면 한 칸에 해당하는 툇마루를 두어 측면 4칸이 되는 매우 특이한 구조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보아 육중한 느낌을 주는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다.
마니산이나 정수사 전체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정수사 대웅보전 꽃살문만 보려고 했다.
수령이 3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와 유명한 꽃살문을 보기 위해 정수사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꽃을 화병에 꽂아 놓은 모습을 통째로 투각하여 문살 위에 붙인 통판투조꽃살문이다. 그 위에 단청을 채색하였다. 마치 꽃병에 연꽃과 모란이 피어있는 모습이다.
세련됨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수수해 보인다.
화려하지도 않다.
단청 채색도 튀지 않아 자연과 잘 어울린다.
마음 같아선 꽃살문 앞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겨울 산을 감상하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절간 같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너무 조용해서 조심히 걷는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려다가 사찰 내 어디에선가 동안거(冬安居) 중일 수도 있으니 내 숨소리마저 방해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을 접기로 했다.
고즈넉함의 정석같은 길.
정수사 올라갈 땐 숨이 차서 힘들었는데 내려갈 땐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음악을 들을 때 에어팟을 사용하면 귀가 아픈데 이런 길을 혼자 걸을 땐 에어팟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볼륨을 최대한 크게 올리면 산을 휘감고 도는 음악은 영혼을 가진 채 그 어느 곳에서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아름답게 노래한다.
김영동의 <산행>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길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면 내가 느낀 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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