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

수원 화성행궁 둘레길에서 보내온 꽃편지

문쌤 2023. 3. 27. 01:50

화성행궁 내 미로한정(未老閒亭)에 앉아있으니 성곽 밖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행궁 주차장을 통해 팔달산(서장대) 올라가는 길 표지판을 보고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날씨는 따사롭고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걷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다.
 

성곽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한 폭의 수채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 같은 벚꽃이 활짝 피었고 앙상한 가지마다 새끼손톱만 한 연둣잎 새순이 돋아났다. 개나리는 벌써 메마른 덤불을 노랗게 채색하고 있다.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화성행궁에서 그냥 갔더라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평생 못 봤을 거다.
올라오길 잘했다^^
 
조금 더 걸어보자.
꽃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 보기로 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하얀 벚꽃 잎이 눈처럼 쏟아졌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휴대폰을 꺼내면 어느새 바람은 잠잠해지니, 이럴 땐 순발력을 발휘해 순간 포착을 해야 한다.
 

담 너머 육각정 미로한정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미로한정에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이 모두 보인 탓에 궁금하여 올라온 것이다.
 

정조대왕 동상 안내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웅장한 정조대왕 동상은 처음 본다.
 

가느다란 가지에 점점이 매달린 산수유만 보다가 가지가 휘어질 것처럼 수많은 노란 별을 달고 있는 산수유를 보니 느낌이 새롭다. 구례 산동 산수유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행궁 둘레길에서 만난 단 몇 그루만으로도 산수유 꽃말인 '영원한 불멸의 사랑'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햇볕을 잔뜩 머금은 연둣잎새.
반짝거리며 윤기가 돈다. 보통 4월에 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이다. 난 이때가 참 좋다.
이 모습이 너무 좋아 초록이 되기 전에 마음껏 담는다.
 
 

가지가 휘어질 듯 수많은 꽃송이를 달고 있는 벚나무.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서 사진을 찍었다.
단 한 그루에서 만들어낸 풍경이지만 벚꽃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벚꽃 아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이 주변에서 가장 화려한 벚나무여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보니 오래 머물기도 미안하다. 일단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이라니...
날씨도 좋고 몸 상태도 양호하니 마음 같아선 성곽 둘레길을 끝까지 걷고 싶었다. 
 
강화도 성곽이 이런 모습일 거라 생각하며 걸었다가 길 잃어버리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화성행궁 둘레길을 무조건 걸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여기서 되돌아가야 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번외

'되돌아가야겠다'생각과 동시에 급 유턴했는데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목에 건 멋쟁이 아주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외면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 미묘한 상황이라니...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니 그녀는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켜고는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저 멀리에서부터 계속 나를 찍으며 따라왔단다. 
 카메라 안에는 내가 걷는 모습, 내가 꽃을 찍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족히 수십 장은 되어 보였다.
 

아이고~~~~ 내가 미쳐!!!

 

'이러는 경우가 어딨어요 ㅠㅠ'
 
그녀는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을 빠르게 넘기며 보여주고는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카메라를 off로 한 후 유유히 사라졌다.
나도 잽싸게 휴대폰을 꺼내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찍었다.
 
아, 활용할 가치라곤 1도 없는 흔들림이라니...;;
 
그녀는 아마도 쌀 한 가마니 정도 가볍게 들어 올릴만한 체력을 가진 듬직한 모델이 필요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
.
.
 
여기까지 쓰고 마무리하려다 보니 생각할수록 웃음이 난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켕기는 것이 있었으므로 나의 목례를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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