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일상 이야기]

[은둔형 아줌마의 일상 이야기]세상 쓸데없는 이야기

문쌤 2024. 1. 18. 06:00

유리 멘탈이라 툭 치고 가는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편이다.
앞으로 열흘, 딱 열흘 동안만 마음 잡고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럼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탁탁탁 자판을 두드리는 걸 보면 견딜만하다는 뜻이다.
만약 1일 1포스팅을 하지 않는다면 그날은 멘탈이 박살 났다는 뜻...
 
 
#1. 관심받고 싶지 않아
예민한 사생활 묻는 걸 주저하지 않는 A는 우리 교실에서 경계의 대상이다.
 
A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회원들은 주저하면서도 상처(喪妻), 이혼, 숨기고 싶은 환갑의 미혼에서부터 자녀의 결혼생활 등 어쩔수없이 얘기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되도록 말 섞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그녀의 안테나가 나를 향했다.
 
나이로 보면 내가 언니다.
하지만 A는 언니 따위 안중에도 없다.
무조건 들이밀고 본다.
 
어떤 질문으로 나를 파헤치려고 할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는 아침에 뭐 먹어요?"
 
언제나 그렇듯 맥락없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질문에 비하면 엄청 순한맛이다.
 
아마 기골이 장대해서 뭐 먹고 사는지 궁금했나 보다.
 
마침 며칠 전 택배 받아서 인증 사진 찍어둔 걸 보여줬다.
 

"사과는 이해하겠는데 당근 한 박스 사서 뭐 해 먹느냐, 토란을 한 박스씩 살 이유가 있느냐"며 흥분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구했다.
 
쩌렁쩌렁한 그녀의 목소리에 다들 한 마디씩 보탰다.
 
"토끼도 아니고 왜 당근을 많이 사요?"
 
"하나만 사도 고명으로 조금 쓰고 절반은 냉장고 구석에 돌아다니다가 버리는데~"
 

"아침에 이런 거 해 먹는다오~"
 
사과, 당근 기본에 양배추 있으면 넣고 없으면 귤도 하나 넣고 바나나도 하나 넣고 갈아서 먹는다고 말하니, 
 
"그러면 언니처럼 되나요?"
하며, A도 당근을 박스로 주문해야겠다며 나에 대한 관심은 일단락되었다.
 
자, 질문에 대한 답을 했으니 이걸로 나에 대한 관심을 거둬주시오!
 
 
#2. 나도 언젠가는 펑~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를 시작하며 서로 응원을 보낸 이웃님들이 몇 달도 안 되어 자취를 감추거나, 1년 이상 꾸준히 소통했는데 구글 방침에 백기를 들고 블로그를 떠나는 이웃님들을 볼 때마다 허탈했다.
 
얼굴도 모르고 관심분야도 다르지만 일상 이야기나 취미 또는 전문 분야의 포스팅을 읽으며,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심리적 친밀감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펑~ 사라져 버리는...
 
그러나 그런 경험도 내성이 생기는지, 처음 계정 폐쇄한 이웃님에게 받은 충격보다 지금은 강도가 훨씬 약해졌지만 암튼 기분이 다운되는 건 여전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티스토리에 열정도 목표도 없는 것 같다.
 
그저 하루 기록하는 일이 좋을  뿐이다. 
형식 따위 중요하지 않다.
 
어제 한 일도 기억 못 하는데 한 달 전에, 1년 전에 내가 한 일을 차곡차곡 엮어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것에 만족하니 구글이 무슨 짓(?)을 해도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 같다.
 
 
#3. 지하철 에피소드1
요즘 많이 어지러워서 장 보러 가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어느 날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젊은 여학생 앞에 서있었다.
 
한참 가던 중 여학생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어폰을 빼고 허리를 숙여서
"못 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했다.
 
다시 말해줬는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잘 안 들린다며 허리를 더 숙였더니, 그녀도 이번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발을 움직이다가 앞엣 분(나를 말함) 신발을 밟았는데 죄송합니다"
이러는 거다.
 
아하~
발을 움직이다가 살짝 스쳤나 본데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고, 설령 느꼈다 해도 발을 일부러 꽉 밟은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일까.
 
너무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내가 더 민망스러웠다.
 
"아~ 전혀 몰랐어요, 괜찮아요~"
 
이 작은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났다.
 
 
#4. 지하철 에피소드2
출퇴근 시간과 달리 낮에 지하철을 타면 한가한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복잡해서 백팩을 앞으로 매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내가 내릴 역에 도착해서 출입문에 섰는데 환승역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 하차했다.
 
출입구 쪽에 기대어 있던 아가씨가 한 템포 늦게 내리는 바람에 뒤에서 밀치는 사람들에 의해 나도 밀리다시피 내리다 그 아가씨 등에 내 백팩이 닿았다.
 
"미안해요~"하고 지나가려는데 그 아가씨가 나를 따라왔다.
따라왔다기보다는 같은 환승역으로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그랬을 거라 믿고 싶음;;)
 
함께 내린 사람들이 환승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내 옆에 붙어선 그 아가씨는 계속 내게 불만을 나타냈다.
 
나는 기골이 장대한 만큼 보폭이 넓어서 성큼성큼 걷는데, 키 작은 그 아가씨는 내 보폭 맞추기 힘들었을 텐데도 기특하게 내 옆에 붙어서 계속 찰진 욕을 해댔다.
 
'입에 걸레를 물었나...'
 
저 빛나는 청춘의 아름다운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사람들 시선도 있으니 그만하면 좋겠는데 뭐가 그리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나를 닦달하는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사람들에게 밀려서 내렸는데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일을, 앞으로 맨 백팩이 닿았다고 입에 문 걸레를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런 애한테 말려들면 끝장이다.'
 
무시하고 계속 걷다가 환승역 출입문에 도착했다.
 
그녀는 내 옆에서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걸레를 놓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할까?
엎드려 사죄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내 가방이 그 아가씨에게 닿은 줄도 몰랐다.
째려보면서 욕하길래, 흠칫 놀라서 "미안해요"했던 건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성난 아가씨의 마음이 풀릴까?
.
.
.
 
지하철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내가 먼저 타자 그녀도 따라서 탔다.
 
좁은 공간에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서있는 그녀.
 
...
 
...
 

사람 많은 곳에서
한 판 해보자는 건가?

큰 소리로 소란 좀 피워봐?

 
 
사람들은 많고 모두 휴대폰을 들고 있다.
작정하고 걸어오는 싸움에 말리면 쓰레기 같은 영상이 SNS에 떠돌 테고 여차하면 뉴스에도 나오겠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지하철 문이 닫히는 신호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녀는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밀착해 서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이번에는 지하철 밖에 있는 나를 향해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한 것을 확인한 후 그제야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
.
.
 
그날 이후 쫄아서 지하철 안 타고 며칠 운전하고 다니다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다시 지하철을 탄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