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하나를 온전히 나의 서재로 사용하던 때는 책 늘려가는 게 취미일 정도로 기쁨이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읽지 않고 소장에 의미를 둔 책도 많았다.
입지 않고 언젠가는 입을 거라는 착각 속에 쌓아둔 옷장 안의 옷들이 거대한 짐이 된 것처럼 어느 날 수십 년간 나의 기쁨이었던 책들이 나를 억누르는 짐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각성하고 모조리 정리한 후 집 근처 도서관을 나의 서재인양 이용하자는, 꽤나 건전한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책장에 쌓아두지 않겠다는 나만의 약속이다.
그렇다고 전혀 책을 구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놓은 게 있다면, 한 달에 한 권만 구입하기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중하게 생각해서 구입하겠는가.
지난달에 산 책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근후 지음/ 출판 갤리온>이다.
지금도 빽빽하게 적힌 나만의 '재미있게 놀기' 스케줄에 치일 정도인데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한 방법이 있다고?
머릿속에서 형광등 백 개가 켜진 것처럼 환해졌다.
1935년생인 이근후 이화여대명예교수는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흔에 가깝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강연을 통해 '재미있게 살기'를 전파하고 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새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p31
이근후 교수에 비하면 훨씬 젊지만(?)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친 억겁 같은 시간을 겪고 나면 아침에 눈을 뜰 때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작가가 말 한 '찰나적인 신비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중간중간 '즐거운 인생을 위한 tip'도 혹시 모를 어리석음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제3의 인생,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맞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하면서 뛰어들기 전에 잘 살펴보라.
혹 안 해도 될 일을 체면이나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보라.
그렇게 살아야 꼭 좋은 인생, 성공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데 소중한 시간을 다 써 버리지 마라.
뭐든 지나치면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지듯, 좋은 욕심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p101
책장을 덮고 '놀기'에 전념을 다하는 나는 빼곡한 다이어리를 펼쳐봤다.
흐뭇하다.
지나간 일,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 아침 눈 뜬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며 오늘도 재미있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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