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作心三日)
―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
마의 구간인 3일을 넘기고 나니 [100일 걷기 챌린지]가 수월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걷고 있다.
만약 '걷기'가 아니라 '등산'이나 '달리기'였으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0일 걷기 챌린지]는 그냥 걸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잘 한 선택이다.
[100일 걷기 챌린지]가 끝나고나서 자신감 상승으로 '무모한 도전'은 하지 말아달라고 미래의 나에게 당부하고 싶다^^
그냥 걸을 땐 몰랐는데 한꺼번에 만 보 걸으려고 하니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다. 그런데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시작한 지 며칠 만에 드디어 '요령'이라는 게 생겼다. 분산 투자... 아니고 분산 걷기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는 편이어서 바로 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온다. 평균 3000~4000보 정도는 걷는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패턴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차타고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요즘은 걸어서 요가 배우러 간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인데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이유는 '비 오니까', '늦어서' ,'피곤하니까' 등등 핑곗거리를 대라면 58000개 정도는 거뜬히 댈 수 있다. 하지만 멀쩡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다닌다.
김포 장릉 가는 길
오늘 오후엔 어디를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논란의 장소인 일명 '왕릉 뷰 아파트'의 그 왕릉이 있는 김포 장릉에 다녀오기로 했다. 주차장이 너무 좁아서 주차를 못 해 애먹었던 기억이 나서 아예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마침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사우역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후다닥 내려갔다. 네이버의 도움으로 버스가 몇 정류장 전에 있는 지 알 수 있으니 나름 계산해서 뛰다시피 했다.
막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버스는 손님을 태우고 서서히 움직이려고 했다.
불과 몇 걸음 차이지만 마음만 앞설 뿐 다리는 내 마음처럼 뛰지 못했다. 버스 꽁무니에 다다랐을 때 다행스럽게도 버스는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다.
과연 기사님은 문을 열어줄 것인가? 이미 출발한 버스는 신호등에 걸려 멈춰섰다고는 하나, 버스 꽁무니는 정류장 쪽에 뒷바퀴를 담그고 있으니 문을 열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평소 뛸 일이 없다보니 몇 걸음 뛰는 흉내를 냈을 뿐인데도 숨이 찼다. 버스 앞 쪽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기사님은 나를 힐끔 보더니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리셨다. 사이드미러로 버스를 향해 뛰다시피하는 나를 봤을텐데, 이상하다.
혹시 서로 사인이 엇갈렸나싶어서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니,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또 고개를 반대로 돌리셨다.
아... 이때 눈치 채고 빨리 포기했어야 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불쌍한 어린양(이라 쓰고 아줌마라고 읽는다)'의 모습을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하지만 걱정마라!
한 번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지만 다른 버스가 온다.
오늘도 걷는다
사우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탈 수도 있었으나 일부러 걸어갔다. 걸음 수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다.
김포시청에서 장릉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연수원이 하나 있는데, 연수원 건물 안에는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 '그린베어'가 있다. 추억의 장소다.
수십 년은 되어보이는 단단한 원목 가구에 몇천 권은 되어 보이는 책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는 카페다.
(허리가 아픈)내가 생각하는 이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크고 편안한 소파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이 있다.
카페에 흐르는 음악도 클래식이다. 조용히 책을 보는 사람, 낮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데시벨이다.
편안한 소파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넓은 정원이다. 요즘엔 어딜 가더라도 기업형 카페가 많지만 그런 카페와는 차원이 다른 우아함이 있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창밖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구한말 가배를 마시는 신여성' 느낌이 든달까?
위에 썼던 '그린베어'카페는 오늘은 가지 않았다. 혼자서는 그 중후함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음하하하~~
예전에 가봤던 '그린베어'카페에 대한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자, 다시 장릉을 향해 걸어가보자.
'그린베어'카페에서 장릉 입구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살짝 오르막이지만 다리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입구 도착!
어랏? 주차장이... 비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타고 오는 건데... 아쉽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매표소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출입구 문이 닫혀있는 게 아닌가.
저기요...혹시? 오늘이 정기휴일인가요???
그렇다.
정기휴일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잘됐다. 장릉은 다시 오면 되고 아껴둔 '그린베어'카페에서 우아하게 차 한 잔 마시고 돌아가면 된다.
이 생각을 하고 주차장을 걸어 나오는데 등산복 입은 몇몇 사람들이 주차장 옆길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그 길은 장릉 외곽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장릉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몇 번 가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덜했다.
둘레길을 걷다보니 벤치에 앉아있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 세 분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세 분 중 한 분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나 보다.
새소리, 바람소리, 노랫소리 그리고 소녀 감성을 지닌 60대 아주머니들의 수다.
행복해 보였다.
평일 오후 3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장릉이 아쉽다면 다음에 다시 도전!
대신 만 보는 가볍게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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