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35일차. 강화산성 한 바퀴... 과연 그럴까?

문쌤 2022. 10. 20. 23:44


오랜만에 '계획'이란 걸 세워봤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분 단위로 쪼개서 수업을 하던 때도 있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는지에 대한 회의감... 빼곡하게 적힌 스케줄만 봐도 숨이 턱 막혀와서 이젠 계획을 안 세운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그 '계획'이란 걸 세워봤다.
지난 강화 나들이 때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 중에서 '강화산성' '조양방직' 딱 두 군데만 가기로 정했다.
강화산성 남문을 시작으로 - 동문 - 북문 찍고 서문 도착 후 조양 방직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신 후 다시 남문으로 돌아오는 간단한 코스였다.


한번 다녀온 곳이라 익숙한 길과 가게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하기 전 밥부터 먹기로 했다. 강화 시내에 있으나 최소 50년은 되어 보이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허영만 백반 기행, 더 짠내 투어, 생방송투데이, 이 피디가 간다 등 방송 출연으로 이미 유명한 '강화집'이다.

가게는 아주 협소했다. 4인 테이블이 2개, 신발 벗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2개 그리고 나홀로 손님을 위한 벽 보고 앉아 먹는 의자 3개.


메뉴도 간단했다. 대표 메뉴는 닭곰탕(6,000원)과 백반(6,000원)이다. 요즘 설렁탕도 만 원이 넘는데 6,000원이라니. 더군다나 닭곰탕에 딸려 나오는 밑반찬이 9가지다. 이렇게 퍼주고 남을까 싶었다.

좁은 식당 내 벽면엔 유명인들의 사인이 붙어 있어 '맛 집'임을 인증해주고 있었다. 패스트푸드보다 더 빨리 음식이 나왔다. 속전속결의 끝판왕이다.


강화산성을 거닐다


식사 후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강화산성 동문(망한루)이었다.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 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동문을 지나 '강화나들길' 팻말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원불교 예배당 앞 작은 공원에서 잠깐 쉬었다. 상황에 따라 차와 커피를 타서 마시려고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는데 마침 차를 마시기에 적당한 공원 벤치가 있었다.

하루종일 걸으면서 들었던 노래. 차 마실 땐 낭만을, 산길 걸을 땐 무서움을 덜어주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한줄기 바람도 스치는데 공원 앞 커다란 느티나무는 마치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아 노래도 한 곡 틀어놓으니 그곳이 바로 야외 카페였다.


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엘 들어갔다. 일정에 없는 장소였지만 지난번 갔던 성공회 강화성당과는 결이 다른 성당이어서 관광객들이 들어가자 자연스럽게 휩쓸려 따라 들어갔다.


아주 작은 성당이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인 데다 종교시설이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초등학교와 마주 보고 있다 보니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 소리가 자연스럽게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조용한 동네에 활기를 넣어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강화산성은 내가 아는 그런 산성 형태가 아니어서 많이 헷갈렸다. 그러다 북문 가는 길에 잠시 길을 잃었지만 한 부부를 만나 뒤따라갔다.


북문은 원래 누각이 없었으나 조선 정조 7년(1788)에 강화 유수(조선 시대 수도 이외의 옛 도읍지나 국왕의 행궁이 있던 군사적 요지에 둔 유수부의 관직) 김노진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고 하였다.

그 위 북문은 전쟁으로 부서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으나 1977년에 강화중요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북문을 통과하면 작은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고 산성을 올라가는 길도 있다.

북문까지 함께 걸었던 부부는 쉬운 길로 내려가고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외국인 가족은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나는 혼자 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길을 선택한 순간 여기에서부터 오늘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눈으로 가늠해보니 멀어 보이지 않았다. 가다가 끊기고 다시 강화나들길 팻말을 따라가면 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강화산성을 너무 얕봤나 보다.
길은 끝이 안 보였고 생수는 이미 다 마셔서 빈병이었다. 산성 꼭대기에 다다른 멀리 누렇게 익은 황금 들판이 펼쳐져있고 그 앞으론 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 건너엔 아마도 북...한...? ^^


다행히 강화나들길 팻말을 만나 안심하고 계속 걸었다.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걸어갔는데 이번엔 산 아래로 계속 내려가라는 표시가 나왔다.


솔직히 산길 내려갈 때 좀 무서웠다. 산짐승이 나타날까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가방 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했다.
지폐 몇 장으론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아이고~ 무서워라... 넘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산길인데 발은 모터를 단 기계처럼 '걸음아 날 살려라~'였다.
산길이지만 몇 미터 간격으로 강화나들길 팻말이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산길을 다 내려오고 보니 마을이 나왔다. 유명한 강화섬 쌀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 양쪽 길 모두 몇 채의 집을 지나면 다시 산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어요?"

"앞으로 쭉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 나와요"


'앞으로 쭉'이 얼마만큼의 거리인지는 모르지만 큰 길이 나오고 버스가 다닌다니 안심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딱 한 대 있는 버스 시간표를 검색해보니 하루에 2회 운행한다고 적혀있었다.

'옴마야~ 나는 어떻게 집에 가지? 오늘 안으로 집에 갈 수는 있는 거야?
정신 차리고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해보자...'

그때 저만치서 동네 주민인 아주머니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고 계셨다.
강화산성 서문은 고사하고 집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강화군청까지 가는 길을 물었다.

"지금은 버스 없고 가려면 걸어가야 돼요"

"얼마나 걸어가면 될까요?"

"글쎄... 앞으로 쭈~~~ 욱~~~ 계속 쭈~~~욱~~~ 걸어가다보면 쎄븐 뭐라는 편의점이 나와요. 그 뒤로는 좀 어려운데..."

"아, 세븐일레븐요?"

"일단 거기까지 가서 다시 물어보세요"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쭈~~~욱~~~ 계속 쭈~~~욱~~~ 걸었다.

드디어 세븐일레븐 표지판이 보였다.


'세븐일레븐 300m 앞'

앞으로 또 300m라니...


내 정신은 이미 기절해 있는데 머신을 단 것 같은 발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땐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걷다가 걷다가... 드디어 세븐일레븐에 도착. 너무 반가웠다.
생수를 사며 아르바이트생에게 강화군청 가는 길을 물었다.

"앞으로 쭈~~~ 욱~~~ 걸어가면 나와요"

"......"

강화중학교 지나서 쭈~욱~ 걸으면 강화군청 나와요


내가 걷는 게 아니다. 다리가 스스로 걸었다. 해 지기 전에 집에 가야지...

우여곡절 끝에 집 나간 지 8시간 만에 해 지기 전에 다시 컴백홈~! ^^

아침에 계획했던 강화산성 4대 문은 다 찍지 못하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싶었던 조양방직도 못 가서 아쉽다.
다음에 또 가야지~^^

걷기 챌린지 기간 중 가장 많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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