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밝혔듯,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중국행에 몸과 마음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살아야' 했고 '배워야'했다.
학교 내에선 특히 점심 시간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메뉴를 읽고 말할줄 알아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밥, 밥, 밥
학생 식당에서 같은 반 유학생들을 만나면 도움을 받기도 했다.
특히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 학생들의 메뉴를 따라서 주문하곤 했는데,
일주일 내내 그 메뉴만 먹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물론 맛있었지^^
그러다가 외국인 학생들이 먹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따라서 시키거나,
내 앞에서 주문하는 중국 학생의 낯선 음식을 보며 같은걸 달라고 하기도 했다.
뭐라고 말했냐고 묻는다면?
우리에겐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가 있고,
더불어 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천하무적 대한민국의 아줌마라는 사실!
중국어가 입에 달라붙은 뒤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주문을 하거나
식당 입구에서 메뉴판을 읽고 골라서 들어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진화하기 까지
아마도 두 학기를 마친 이후가 아니었나 싶다.
한 학기 약 4개월 정도 배우고 방학 동안 다 까먹고 다시 한 학기 다니고...
그러다 때려치우고... 1년 쉬다가...
어느 학기엔 다시 또 수강 신청해서 다니다... 말다...
시험, 시험, 시험
그랬다.
어학원 코스를 공부하다가 HSK 자격증을 따면 본과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HSK 자격증을 따고도 나이 제한에 걸려 본과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유학생 담당 선생님은
"대학교는 40세, 석사는 45세가 커트라인"이라고 하셨다.
'엥? 나는 둘 다 해당 안 되네?'
중국에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던데,
이 문제는 '되는 것도 없는' 쪽에 해당되는구나...
교과서의 수준 차이는 있었지만 늘 똑같은 반복이 심드렁해져서
불량한(?) 학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시험 성적에 굉장히 민감하다.
나도 학생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성적표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도 버거웠다.
중간고사 30%,기말고사 40%, 평소 점수 30%
평소 점수는 우리 나라와 비슷하다.
출석 35%, 숙제 30%, 수업시간 참여도 30% 그리고 문화 수업 5%
단, 휴가서(결석계)를 자주 내거나 결석 3번 하면 시험을 봐도 취소,
지각 또는 조퇴 3번은 결석 1번과 같다.
너무 빡세다.
그때 알았더라면...
영어 때문에 처음 중국어 수업 들을 때 한 학기 내내 고생했다는 얘기를 이미 첫 장에 고백했다.
중국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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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 중에서도
가장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이 기초반 수업을 맡았다고 한다.
학교 측 배려인데도 그 배려를 받아먹지 못했다. ㅠㅠ
같은 반 교실에서도 너도나도 중국어가 서툰 기초반일 때는
외국인 학생들과
"니하오!"
인사 한 마디도 겨우 했었다.
하지만 중국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학생들과 사생활을 묻고 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한 여학생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영어 학원에 가서 중국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규정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 외국인 본과생은 아르바이트가 허용되었으나
어학원을 다니는 유학생은 금지되었다.
그 학생은 '비밀'이라고 내게 말했었다.
그땐 중국어도 벅찬 시기였던 터라
그 얘기를 듣고도 흘려버렸는데
훗날 후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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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생에게 영어를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영어뿐 아니라 배우고자 마음먹으면 못 할 외국어가 없었다.
터키, 일본, 러시아, 베트남, 몽고 등등
기회가 늘 있는 게 아닌데...
...
...
굳이 변명을 하자면,
위에서도 밝혔듯,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중국행에 몸과 마음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살아야만' 했고 ' (중국어를) 배워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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