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중국 생존기

1화 - 그깟 콩나물이 뭐라고...

문쌤 2022. 6. 12. 23:18

2015년 2월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아들, 딸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덜 힘들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루커우 공항에 내리기 전부터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았는데

살다 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대학생이었던 아이들은 휴학을 하고 중국행에 기꺼이 동참했다.

내가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기도 했지만...

 

 

 

 

 

중국 발령받고 회사에서 마련해 준 집에 도착했으나,

약 한 달 전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출국할 때 가지고 간 트렁크에 든 옷가지며 약간의 비상식량이 전부였다.

 

우리나라 아파트 35평 정도 되는 중국 사택은 특별할 것 없는 일반 아파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 일반 아파트는 특히 남부 지역 아파트는 보일러 설치한 집이 매우 드물었다.

다행히 바닥 보일러 난방이 되는 몇 안 되는 아파트를 사택으로 사용하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환영식을 마치고 돌아왔는데도 너무 추운 집 안, 

겨울인 데다 굉장히 습하고 오랫동안 빈 집 상태여서 집안이 따뜻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억은 안 나지만 한국 직원이었는지 중국 통역 직원이었는지 누군가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집 안 공기가 빨리 데워집니다."라는 팁을 주었다.

 

직원들이 모두 돌아가고 온전히 우리 가족 4명만 남았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생각에 약간은 긴장감이 풀어지는 듯했다.

가족이 함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퍽!

첫날밤(?)을 맞이하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퍽! 소리와 함께 집 안이 어두컴컴한 어둠의 세계로 변해버렸다.

갑자기 전기가 끊긴 걸까?

커튼을 젖히고 앞 동을 살펴봤다. 다른 집들은 불이 켜져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만 전기가 나간 것이다. 

"집 안 어디에 두꺼비집이 있을 거야"

 

우리 가족은 핸드폰 불빛에 의존한 채 두꺼비집을 찾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집 안을 아직 다 둘러보지 않은 상태에서 두꺼비집을 찾기란 어릴 적 보물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사 통달한 것처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을 인정하기엔

그때 당시 유리 멘털인 나로서는 '재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꿈일 거야'

 

심장을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

중국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두꺼비집은 아파트 1층 외부에 있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통역 직원의 도움으로 밤이 깊어지기 전 우리 집엔 다시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의 큰 산을 넘은 것처럼 긴장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과 나는 '살기 위해 먹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을 아껴 먹으며 현지 마트에서 장 보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그날도 아이들과 먹을거리를 사러 나갔다.

동네 마트에서 벗어나 걸어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큰 마트로 영역을 넓혀보기로 했다.

직원들의 도움으로 중국어로 마트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갖고 있어서 택시를 타도 됐지만 쫄보들이라서 걸어서 갔다.

 

길도 익힐 겸...

다행히 며칠 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봤던 곳이라 지도를 보며 찾아갈 수 있었다.

 

 

 

 

 

 

따룬파 마트.

한국에 있을 땐, 패스트푸드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별로 좋아하는 않은 음식이었지만

모든 게 첫 경험이었던 우리에게 따룬파 마트 안에 있는 컨더지(KFC)는 안식처 같았다.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외국인이 많지 않은 도시의 마트,

그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중국어를 1도 못하는 한국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는 일은

그야말로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림이 있는 메뉴판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겨우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디서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인 아주머니 세 분이 KFC 매장 내에 계셨던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같은 아파트에 한국 직원 가족이 살고 있었지만,

꼰대나 상사 가족 갑질로 비쳐 불편하게 할까 봐 공식 행사 외엔 만남을 자제했었다.

그래서 중국 도착한 첫째 날을 제외하고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말만 들어도 반가운 때였다.

 

그분들은 한인 모임을 통해 우리 가족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그분들의 장바구니를 보니 콩나물이 담겨있는 게 눈에 띄었다.

집 앞 마트에선 구경 못한 콩나물이라니...

 

"징화청엔 콩나물 안 팔던데 어디에서 사셨어요?"

 

 

 

내 질문에 그분들의 답변은,

3월부터 시작하는 학교 수업에 엄청나게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거? 쉽게 알려주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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