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외국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 일인가.
더군다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은 큰 결심과 도전정신 그리고 인내력이 아니고는 그 시간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폰에 저장했다가 용량이 많아 네이버 MYBOX로 옮겨진 사진들은 그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나를 대변해준다.
"열심히 살았던 나, 칭찬해"
해외 주재원 발령받은 남편과 함께 중국에 간 건 2015년 2월 1일이었다.
중국어에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과연 그 곳에서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하고 처음에는 많이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많고 도전 정신도 조금 있는 데다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은 즐기기까지 하는 기질이 있다 보니 잘 헤쳐나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나는 회사 업무 파악하는 일만으로도 정신없으니, 당신은 알아서 학교에 다니고 빨리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게"
그 말을 들으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낯선 세상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닌 한국인도 거의 없는 지방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다니...
마치 생존게임 같았다.
다행히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 덕분에 겨우 대학교 어학원 등록을 마칠 수 있었고, 학기 시작 후엔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악착같이 학교에 다녔다.
택시 타는 것도 무서워 한 학기 동안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버스만 타고 다녔다.
영어도 거의 못하는데 어떻게 중국어를 배워서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나이 오십에 말이지.
지금은 중국어를 어느 정도 잊어버렸다고는 하지만, 어느 순간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는 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다.
다만 영어로만 수업을 하던 한 학기 기초 수업이 지난 후 다음 학기엔 모든 수업을 중국어로만 진행했었는데, 그렇게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씩 귀가 트였던가 보다.
그 때부터 꽤 많은 질문을 알아 듣고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했던 동선이 학교 앞 식당가나 번화가 쪽으로 넓어졌다 ㅎㅎ
참, 첫 학기엔 모든 선생님들이 영어로 중국어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솔직히 학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영어를 잘 모르는데 자꾸 영어로 질문을 하면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에서 땀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발 나한테 질문을 안 했으면 좋겠다'
이란이나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 온 학생들은 선생님과 영어로 질문하고 대답했다.
수업시간에 옆을 슬쩍 쳐다보면 수업을 즐기는 그들이 너무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나는 한자를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 설명을 몰라도 대부분 이해하고 시험 결과도 좋았다.
이 부분은 외국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다.(정작 '수업을 즐기는 그들'은 영어로 대화하며 수업만 '즐겼을 뿐' 공부는 안했거든...)
'왜 한국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질문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면서, 시험 보면 점수가 좋은가?'
그때는 영어나 중국어 실력이 한참 부족해서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말해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수업시간엔 조용히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고, 시험 기간엔 잠도 안 자고 벼락치기를 해서 그렇다"
실제로 시험이 있는 날엔 거의 잠을 안 자고 시험공부를 했으며 버스 안에서도 하고, 요새 애들 말로 '초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나면 온 삭신이 쑤시고 아파서 며칠 앓아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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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또래 외국 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조별 과제도 하고 문화 행사나 대회에 출전하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주책맞게 모든 활동에 다 따라다닌 건 아니다.
이래 봬도 '낄끼빠빠' 정도는 안다.
아름다운 그 시절, 앨범 속 추억을 컴퓨터 안에 저장해두기만 하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사진에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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