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접하고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최소 10년 이상 활동하는 '성실함' 빼면 시체인 내가, 최근 성실하게 관심 갖고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경희대학교 김진해 교수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쓴 '칼럼 읽기'다.
한겨레 신문에서 우연히 칼럼 한 편 읽고는 돌아서서 금방 잊어버렸는데, 몇 주 지나서 또 다른 칼럼을 읽게 되었다. 김진해 교수의 글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읽은 게 아니라 읽다 보니 김 교수의 글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렇다고 광팬은 아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아이돌 스타나 임영웅급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생각나면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는 여유?
한 번씩 글을 읽는 것으로 애독자로서의 예의를 표현하고 있다.

김진해 교수의 글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데려왔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2788.html
주인이 궁금해지는 ‘힘 뺀’ 글쓰기
내 얘기가 독자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행위 ‘글쓰기’
h21.hani.co.kr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어떤 정보를 알려주는 글을 보고 글쓴이가 궁금하지는 않잖아요.
촘촘한 논리나 멋진 표현이 아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지죠.
살아오면서 한 가지 일만 했다면 어떻게 그리 뚝심 있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버텨왔는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리 다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지켜왔는지, 뭘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그 방황의 냄새와 깊이가 궁금합니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는 글,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을 쓴 사람이 보고 싶더군요.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은 그 글이 나에게 와닿았다는 뜻입니다. 굳이 글을 쓰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라는 대목에서 멈칫했다.
공포 쪽에 가까운 옛날이야기를 잠깐 소환하자면,
아주 오래전에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음악 활동이 취미여서 공연 보러 다니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는데, 나의 밥벌이와 취미가 딱 겹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밥벌이를 하면서 취미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짬을 내서 '다음 카페'에 열심히 응원을 보냈다.
그 음악 단체는 합창단이었는데 합창단 단원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카페 활성화에 공을 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쓴 알맹이없는 수다스런 글들이 누군가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내게 '만나자'는 쪽지를 보내왔다.
혹시 오해할까 봐 미리 밝히는데, 그는 여자다. 그 당시 그녀는 20대였다.
쪽지를 주고받을 때 그녀 스스로 '여자'라고 밝혔으나 나를 대하는 그의 감정은 오해할 만했다. 만나고 싶다는 그의 연락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하길 몇 차례.
더 이상 핑계 댈 '꺼리'가 없었고 사실 못 만날 이유도 없어서 덜컥 "만납시다" 며 한적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약속은 했지만 겁이 났다.
'혹시 무서운 깍두기면 어쩌지?'
'가방에 칼이라도 챙겨가야 하나?'
무서울 게 없는 천하의 내가... 약속 날짜가 다가올수록 무서움이 커졌다.
헛짓하고 다닌다고 할까 봐 남편한테는 말을 못 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
'다음 카페'에서 내가 왕성하게 활동하게끔 이끈 합창단 단원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밝히며,
몇 시에 어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날 것이니 2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만약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약속 장소로 갔다.
차를 몰고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해보니 그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니 그가 금방 따라 들어와서는 당연하다는 듯 내가 앉은 테이블로 와서는 만나기로 한 사람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여자였다.
일단 깍두기는 아니어서 안심했다.
평범한 20대 아가씨였다.
화장도 안 하고 옷차림도 수수한...
그녀가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긴장감이 풀어졌고 같이 차(茶)를 주문했다.
"일찍 왔는데 주차장 차 안에서 보고 있었어요. 제가 상상한 분이 맞나 하구요. 차에서 내리는 모습 보니까 역시... 제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여서 놀랐어요"
...
...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나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표현은, 2시간 후에 전화했는데 연락 안 되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던 합창단 단원에게도 했던 말이고 그 후 합창단을 만날 때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몇 년이 지나도 회자되었기 때문에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그녀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기어코 나의 전화번호를 알아갔고 그날부터 그녀는 매일... 수시로... 나에게 문자를 했다.
어느 날, 인근 대학에 일이 있어서 운전하며 가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 가세요?"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의 심장은 방망이질을 해댔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사실대로 말했다.(거짓말이면 또 어쩔 건데?)

"대학교에 누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방금 내 차가 자기 앞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우연일거야... 우연이라고 말해줘~)
소오름!!!
"언제 일이 끝나세요?"
"기다릴게요" 등등으로 나를 집요하게 코너로 몰았다.
겨우 20대 아가씨일 뿐인데 뭘... 쿨한 척하면서 근처에 있으면 학교로 오라고 했다.
학교 편의점인지 휴게실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볼일을 마치고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대뜸 나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고 했다.

아니... 도대체... 아줌마인 내 손을 왜 잡아보고 싶다는 건지.
도대체... 어떤 심리로 나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는 건지...

대뜸 밥을 사주고 싶단다.
일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는 그녀.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알바든 정식으로 직장에 들어가든, 본인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밥을 사주세요"
그녀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할 거라 믿고 일하는 동안 연락하지 말고 열심히 일한 후... 한 달 후에 월급 받으면 그때 연락하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그 후 그녀는 정말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합창단 카페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한달 후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일 걷기 챌린지]74일차. 자가진단키트 검사 (23) | 2022.11.28 |
---|---|
[100일 걷기 챌린지]73일차. 혼자 놀기의 달인되기/한동안 뜸 했었지/ 청바지 아가씨/ 한국 팝의 고고학 7090 '사랑과 평화' 공연 후기 (20) | 2022.11.27 |
[100일 걷기 챌린지]71일차. 도깨비 아저씨가 구하러 간다/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드림파크 공원 메타세콰이어 길 (32) | 2022.11.25 |
[100일 걷기 챌린지]70일차. 나 혼자 걷는다, 만수산 무장애나눔길 (30) | 2022.11.24 |
[100일 걷기 챌린지]69일차. 느린 성장에 마음이 조급해진 당신에게/[책]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27) | 2022.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