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좋은 친구를 위해 글자 크기를 크게 바꿨다.
친구! 보고 있나? ^^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서 봄에 가면 좋은 곳이 있고 신록이 좋아 여름에 가면 좋은 곳도 있다. 붉은 단풍이 황홀한 곳도 있는 반면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데도 한 폭의 그림 같은 곳도 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지극히 내가 가 본 곳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김포 장릉을 빼놓을 수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어느 계절이나 다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는 뭔가 아쉽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고 하면 조금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눈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소복이 눈이 쌓인다면 달력에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도 베란다 창문엔 커다란 수묵화 한 점 그려진 것처럼 눈이 내렸다. 그러나 내리는 모양새가 어째 영 시원찮다.
비스듬히 누워서 내리는 건 바람 때문이겠지만 소담스럽게 내리지 않는다.
오후가 되니 제법 쌓였다.
그럼, 당장 가야지!

눈 덮인 장릉에 감탄하며 거닐다 붉은 열매가 달린 나무를 찍어보았다.
한 그루는 산수유, 다른 한 그루는 백당나무 열매다.
마침 지나가시던 해설사 선생님은
"봄에 꼭 다시 와서 산수유 꽃과 백당나무 꽃을 봐야 한다" 고 하셨다.
깊은 곳이라 꽃이 늦게 피니까 늦봄에 오면 딱 맞단다.
생각해보니 늦봄에도 장릉에서 활짝 핀 진달래를 봤었다.
그리고는
"오늘처럼 눈이 적게 온 날은 사진 전문가들은 안 온다"며 뼈 때리는 말씀을 하셨다.
"왜요???"
"사진 찍는 사람들은 밤새 소복이 쌓인 날 새벽 6시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 발자국이 없을 때 사진을 찍지"
그러고보니 가는 곳마다 발자국이 있어서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술을 향한 집념은 용납하지 않나 보다.
참, 나가는 길에 매표소에서 확인해보니 정말 새벽 6시에 문을 열더라...
눈이 쌓인 장릉에서 '포근함'을 느꼈다면 뭔가 어색한 표현 같지만 정말 포근했다.
바람 한 점 없고 인적이 드물어 고요하다.
그러고 보니 장릉은 드러내고 펼쳐진 곳이 아니라 오므린 형태라 바람을 느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바람이 멈췄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장릉을 벗어나 김포시청으로 내려가니 바람이 세게 불었다.
산책길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꼬마 눈사람.
눈, 코, 입은 어디 있나요?
마음 같아서는 저수지 가장자리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멍 때리고 싶었지만 너무 을씨년스러워 보일까 봐 꾹 참았다.
다른 계절에 이곳(명칭은 저수지이지만 작은 호수임) 벤치 차지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조용히 담소 나누기에도 좋고 음악 듣기에도 좋다.
대포 카메라로 물새를 찍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다.
물멍 즐기기에도 아주 좋은 곳인데... 음... 일단 벤치가 너무 차가워서 포기 ㅎㅎㅎ
내가 본 아름다운 장릉의 모습과 똥손으로 찍은 사진은 괴리감이 있다.
한 시간 넘게 글 한 줄 사진 한 장 올리지 못한 채 어떻게 할까 고민만 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에잇, 그냥 올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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