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97, 98, 99 ...그리고 10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 제목처럼 너무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걷기 챌린지가 드디어 오늘 포함 5일 남았다.
솔직히 꼼수 부린 날도 많았고 대충 집 근처 어슬렁 거리면서 걸음 수만 채우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도서관이나 공연 또는 전시회 등으로 땜질하며 동네 마실 수준으로 걷다가 요 며칠은 박물관 견학 포스팅으로 도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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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마음 다잡고 제대로 걸어볼 생각으로 노트에 적어놓은 '내가 가고 싶은 곳' 중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을 선택했다.
노트에 적힌 '내가 가고 싶은' 장소는 58,000곳 쯤 되지만 이제 나흘 후면 걷기 챌린지가 종료되기 때문에 아쉽지만 노트는 이제 그만 덮어두기로~ ^^
마침 오늘 낮 기온이 살짝 올라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영하 10 도면 망설여지는데 낮 기온이 무려 0~1도란다. 혹독한 추위로 예방주사를 맞고 보니 0~1도는 오히려 순해 보인다.
(내일 다시 한파 예보가 있어 슬프다ㅠㅠ)
소무의도가 걷기 편하고 아름답다고 소문났다지?^^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도를 간 적 있어서 그 동네는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더군다나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도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미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소무의도 역시 마음을 다 줄 준비를 한 채 출발하였다.
뚜벅이인 내가 소무의도를 가는 방법은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7번 출구에서 무의1번 버스를 타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다.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하던 중 무의1번 버스 시간표를 찾아보니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달리기!!!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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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후다닥 뛰어 올라가고, 출국하는 여행객들의 트렁크 때문에 무빙워크가 만원이어서 옆길로 뛰어갔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체육계의 숨은 원석같은 존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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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3층 7번 출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이 차서 '더 이상 못 가겠다'며 포기하고 에너지 방전된 채 7번 출구에 도착하니,
앗! 무의 1번 버스가 곧 출발하려는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버스 승객은 나 포함 3명.
가는 도중 더이상의 승객 없이 버스는 광명항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정확히 40분을 달려 드디어 종점인 광명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돌아갈 버스 시간표를 보고 있으니 기사님이 다가와서
"구경 잘 하시고 빨리 오면 요놈을 타고, 늦게 오면 그다음 버스는 운행을 안 하니까 요놈을 타면 돼요"
하며 알려주셨다.
'요놈'이란 광명항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을 말한다. 50분 정도 간격인데 중간의 한 대는 운행을 안 하니까 빨리 구경하고 오든지 아니면 아예 천천히 오라는 뜻이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 풍경. 바닷가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직접 잡은 생선을 해풍에 반건조시켜 판매하는 가게가 많다. 소무의도의 특산품인 듯 대부분 가게에서 반건조 생선을 판매하고 있었다. 살찐 고양이도 많더라는 ~ ^^
본격적으로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을 걸어볼까?
해풍에 시달린 나무 표지판. 글씨가 바래서 잘 보이지 않는다.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은 총 8구간이 있다.(바다누리길은 소무의도 한 바퀴 걷는 길, 총 2.5km)
▶1구간 - 소무의 인도교길(414m이며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걸어서 다니는 길)
▶2구간 - 마주 보는길(대무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서쪽 마을과 떼무리 선착장을 연결하는 길)
▶3구간 떼무리길(소무의도의 자연생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 당산길)
▶4구간-부처깨미길(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던 곳으로 주변 조망이 빼어난 길)
▶5구간- 몽여해변길(몽여 해수욕장과 바다 너머 인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6구간 - 명사의 해변길(유명 인사들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고즈넉한 해변이 있는 길)
▶7구간 - 해녀섬길(소무의도 남쪽의 작은 섬인 해녀도를 조망할 수 있는 안산 능선길)
▶8구간 - 키 작은 소나무길(해풍을 맞으며 자생하고 있는 키가 작은 소나무 숲길)
소무의도 인도교길 건너기 전에 대문(?)이 있다???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아니겠지.
소무의도로 갈 수 있는 방법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타는 시간보다 끌거나 메고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가겠다면 멋진 도전정신에 박수!
인도교이기 때문에 차량 진입은 당연히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간쯤 걸어가고 있는데 승용차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하며 뒤돌아보니 '공무용'이란다. ㅎㅎㅎ
다리 위에서 바라본 바다.
성난 파도에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아니다.
회오리바람으로 휘감아 삼켜버릴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옴마야~ 무서워라
후다닥 걸어서 소무의 떼무리항 도착!
총 8구간 중 1구간인 소무의 인도교 길을 건너왔다.
소무의도로 진입하기 전 여러 가지 풍광을 담아보려 했는데, 고프로와 카메라를 들고 영상 촬영하는 여러 청년들을 피해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소무의 떼무리항 표지판 옆에 적힌 '경고'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쓰레기 버리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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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는 안 버리는 걸로~ ^^
만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방향에서 보면 반대편엔 바다와 광명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방금 걸어서 지나온 인도교도 보인다.
윤기 도는 털을 가진 멋을 좀 아는 고양이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소무의도엔 고양이가 참 많았다.
소무의도는 현재 걸어서 갈 수 있는 서해 가장 끝에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제공하고 항일 운동에 앞장선 소무의도는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 후 섬에 방문하여 시국 강연회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관광안내소와 느린 우체통.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혔고 주변은 어구들로 꽉 차서 어수선하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에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아니겠지?
관광안내소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자.
진짜진짜 본격적으로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을 걸을 수 있다.
무의바다누리길은 2011년 10월 10일~2012년 4월 26일까지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하여 지금처럼 편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데크길이 없는 원래의 모습을 보면 그 이전의 소무의도는 너무 불편했을 것 같다.
관광객으로서 소무의도에 한두 번 방문하는 것보다 소무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2022년 현재 78명)의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늘진 곳엔 아직 눈이 남아있지만 미끄럽지 않아 평소 걷는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뜬금없이 유명 여배우의 영화 포스터가 세워져 있다.
영화 제목을 딴 카페 광고판인데... 음... '할많하않'이다.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나도 모르게 바다에 끌린다는 걸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멍을 하게 되는지 아니면 너무 생각이 많아 바다에 버리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심란하지 않아서 좋다.
3구간 떼무리길 절벽 끝에 있는 쉼터.
두 개의 벤치엔 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눈을 치우고 잠시 앉고 싶었으나 한번 앉으면 시간이 오래 지체될까 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대신 절벽 끝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잠시 감상하기로.
'그래, 바다는 이맛이지.'
부처깨미 전망대 또한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해풍에 유연하게 휘어진 소나무가 한층 더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소무의도는 뷰맛집이 많은 곳이다.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인듯...
저멀리 소라 모양의 외관을 한 소무의도 이야기 박물관인 '소무의도 스토리움'이 보인다. 어촌생활 전시실, 체험학습관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패스~!
표지판이 안 보여서 앞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계속 걸어가다가는 바다로 들어가겠는걸?
앗! 오른쪽에 누워 있는 표지판 발견^^
관광객이 많은 여름엔 다시 정비하겠지?
한 계단씩 올랐는데 힘들다.
왜 그러지?
앗! 계단 간격이 너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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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롱다리를 위한 계단인 것 같아~~
잠시 쉬어가자.
여러 표지판 아래 파란색 페인트 바탕의 노란색과 하얀색 글은 글씨가 작아 사실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사유지란다.
'소무의도 '바다누리길' 참 아름답죠? 힐링 가득 만끽하시고 힘내세요!
당부 한 가지만 드릴게요. 이곳 '바다누리길'은 전체가 사유지로 산주(山主) 정명구 씨의 사유 재산을 무료로 개방해 주신 겁니다.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겠죠!'
그러고보니 얼마 전 여행 다녀온 섬은 조각공원 안에 있는 해변을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물론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겠지만 해변을 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초행길인 관광객은 무조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산주(山主) 정명구 씨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걸었다.
계절 탓도 있겠지만 유독 소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소나무는 가녀린 가지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듯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한바탕 눈이라도 쌓이는 날에는 금방 부러지겠는걸?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일품이겠지만 그런 건 사치다. (버스 시간표를 기억하라!)
박정희 前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을 즐겼다는 고즈넉한 '명사의 해변'(솔직히 그정도로 고즈넉하고 좋은지 잘 모르겠음)
누가 지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이름이 지워졌다.
前 대통령의 휴양지였던만큼 그 고즈넉한 해변을 감상하기 위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닷가 저쪽 끝에서 청년 두 명이 뭔가를 하고 있는데, 처음엔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물러섰다.
예술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청년들을 피해서 얼른 찰칵!
前 대통령 휴양지의 고즈넉함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사진만 두어 장 찍고 얼른 자리를 떴다.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 보자.
소나무가... 아예 누웠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면 이렇게 되는 걸까?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걸?
지지대라도 받쳐줘야 할 것 같다.
저 끝은 천국일까?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은 걷는 길이 재미있다.
편안한 데크 길인가 싶다가 보드라운 흙길로 이어지고 또 경사가 심한 계단인가 싶다가 또다시 데크길이 펼쳐져 걷는 즐거움을 준다. 조금 전과 달리 키작은 소나무가 많아 안정감 있다.
소무의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 하도정.
이곳에 앉아 바람을 맞았더니 지금도 찬 바닷바람이 폐 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바람을 너무 심하게 맞았나 보다.
가슴이 아프다.
지나간다 / 詩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애초에 돌탑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한 명 두 명 거들다 보니 이렇게 쌓이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돌멩이 하나 올리며 작은 소원을 빌었다.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에서 가장 힘든 길을 만났다.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었다. 발을 잘 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굴러가겠는걸.
살짝 미끄러질 뻔해서 더욱 긴장하며 로프를 붙잡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갔다.
무사히 버스 정류장 도착!
기사님이 알려준 대로 '요놈'을 타고 소무의도를 뒤로 한 채 광명항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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