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96일차.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문쌤 2022. 12. 20. 23:32


96, 97, 98, 99 ...그리고 10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 제목처럼 너무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걷기 챌린지가 드디어 오늘 포함 5일 남았다.
솔직히 꼼수 부린 날도 많았고 대충 집 근처 어슬렁 거리면서 걸음 수만 채우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도서관이나 공연 또는 전시회 등으로 땜질하며 동네 마실 수준으로 걷다가 요 며칠은 박물관 견학 포스팅으로 도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 다잡고 제대로 걸어볼 생각으로 노트에 적어놓은 '내가 가고 싶은 곳'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을 선택했다.
노트에 적힌 '내가 가고 싶은' 장소는 58,000곳 쯤 되지만 이제 나흘 후면 걷기 챌린지가 종료되기 때문에 아쉽지만 노트는 이제 그만 덮어두기로~ ^^


마침 오늘 낮 기온이 살짝 올라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영하 10 도면 망설여지는데 낮 기온이 무려 0~1도란다. 혹독한 추위로 예방주사를 맞고 보니 0~1도는 오히려 순해 보인다.
(내일 다시 한파 예보가 있어 슬프다ㅠㅠ)

 

출처: 네이버 소무의도 항공사진


소무의도가 걷기 편하고 아름답다고 소문났다지?^^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실미도를 간 적 있어서 그 동네는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더군다나 하나개 해수욕장과 실미도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이미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소무의도 역시 마음을 다 줄 준비를 한 채 출발하였다.


뚜벅이인 내가 소무의도를 가는 방법은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7번 출구에서 무의1번 버스를 타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다.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하던 중 무의1번 버스 시간표를 찾아보니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달리기!!! 얍!!!


제1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후다닥 뛰어 올라가고, 출국하는 여행객들의 트렁크 때문에 무빙워크가 만원이어서 옆길로 뛰어갔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체육계의 숨은 원석같은 존재 아닐까?'

 



천만에!!!
3층 7번 출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이 차서 '더 이상 못 가겠다'며 포기하고 에너지 방전된 채 7번 출구에 도착하니,

앗! 무의 1번 버스가 곧 출발하려는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버스 승객은 나 포함 3명.
가는 도중 더이상의 승객 없이 버스는 광명항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정확히 40분을 달려 드디어 종점인 광명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돌아갈 버스 시간표를 보고 있으니 기사님이 다가와서
"구경 잘 하시고 빨리 오면 요놈을 타고, 늦게 오면 그다음 버스는 운행을 안 하니까 요놈을 타면 돼요"
하며 알려주셨다.

'요놈'이란 광명항에서 출발하는 버스 시간을 말한다. 50분 정도 간격인데 중간의 한 대는 운행을 안 하니까 빨리 구경하고 오든지 아니면 아예 천천히 오라는 뜻이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 풍경. 바닷가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직접 잡은 생선을 해풍에 반건조시켜 판매하는 가게가 많다. 소무의도의 특산품인 듯 대부분 가게에서 반건조 생선을 판매하고 있었다. 살찐 고양이도 많더라는 ~ ^^


본격적으로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을 걸어볼까?

해풍에 시달린 나무 표지판. 글씨가 바래서 잘 보이지 않는다.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은 총 8구간이 있다.(바다누리길은 소무의도 한 바퀴 걷는 길, 총 2.5km)

▶1구간 - 소무의 인도교길(414m이며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걸어서 다니는 길)
▶2구간 - 마주 보는길(대무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서쪽 마을과 떼무리 선착장을 연결하는 길)
▶3구간 떼무리길(소무의도의 자연생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 당산길)
▶4구간-부처깨미길(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던 곳으로 주변 조망이 빼어난 길)
▶5구간- 몽여해변길(몽여 해수욕장과 바다 너머 인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길)
▶6구간 - 명사의 해변길(유명 인사들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고즈넉한 해변이 있는 길)
▶7구간 - 해녀섬길(소무의도 남쪽의 작은 섬인 해녀도를 조망할 수 있는 안산 능선길)
▶8구간 - 키 작은 소나무길(해풍을 맞으며 자생하고 있는 키가 작은 소나무 숲길)

소무의도 인도교길 건너기 전에 대문(?)이 있다???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아니겠지.

 

소무의도로 갈 수 있는 방법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타는 시간보다 끌거나 메고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가겠다면 멋진 도전정신에 박수!

인도교이기 때문에 차량 진입은 당연히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간쯤 걸어가고 있는데 승용차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하며 뒤돌아보니 '공무용'이란다. ㅎㅎㅎ

 


다리 위에서 바라본 바다.
성난 파도에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아니다.
회오리바람으로 휘감아 삼켜버릴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옴마야~ 무서워라

후다닥 걸어서 소무의 떼무리항 도착!


총 8구간 중 1구간인 소무의 인도교 길을 건너왔다.
소무의도로 진입하기 전 여러 가지 풍광을 담아보려 했는데, 고프로와 카메라를 들고 영상 촬영하는 여러 청년들을 피해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소무의 떼무리항 표지판 옆에 적힌 '경고'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쓰레기 버리면 죽는다"


OK~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는 안 버리는 걸로~ ^^


 

 


만화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방향에서 보면 반대편엔 바다와 광명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방금 걸어서 지나온 인도교도 보인다.
윤기 도는 털을 가진 멋을 좀 아는 고양이를 만났다. 그러고 보니 소무의도엔 고양이가 참 많았다.

 


소무의도는 현재 걸어서 갈 수 있는 서해 가장 끝에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범 김구 선생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제공하고 항일 운동에 앞장선 소무의도는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 후 섬에 방문하여 시국 강연회를 연 것으로 유명하다.

관광안내소와 느린 우체통.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혔고 주변은 어구들로 꽉 차서 어수선하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에도 이렇게 방치하는 건 아니겠지?

 


관광안내소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자.
진짜진짜 본격적으로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을 걸을 수 있다.

 


무의바다누리길은 2011년 10월 10일~2012년 4월 26일까지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하여 지금처럼 편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데크길이 없는 원래의 모습을 보면 그 이전의 소무의도는 너무 불편했을 것 같다.

관광객으로서 소무의도에 한두 번 방문하는 것보다 소무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2022년 현재 78명)의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늘진 곳엔 아직 눈이 남아있지만 미끄럽지 않아 평소 걷는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뜬금없이 유명 여배우의 영화 포스터가 세워져 있다.
영화 제목을 딴 카페 광고판인데... 음... '할많하않'이다.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나도 모르게 바다에 끌린다는 걸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다멍을 하게 되는지 아니면 너무 생각이 많아 바다에 버리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심란하지 않아서 좋다.

 


3구간 떼무리길 절벽 끝에 있는 쉼터.
두 개의 벤치엔 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다. 눈을 치우고 잠시 앉고 싶었으나 한번 앉으면 시간이 오래 지체될까 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대신 절벽 끝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잠시 감상하기로.

'그래, 바다는 이맛이지.'


부처깨미 전망대 또한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해풍에 유연하게 휘어진 소나무가 한층 더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소무의도는 뷰맛집이 많은 곳이다.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인듯...


저멀리 소라 모양의 외관을 한 소무의도 이야기 박물관인 '소무의도 스토리움'이 보인다. 어촌생활 전시실, 체험학습관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버스 시간 때문에 패스~!

 


표지판이 안 보여서 앞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계속 걸어가다가는 바다로 들어가겠는걸?


앗! 오른쪽에 누워 있는 표지판 발견^^
관광객이 많은 여름엔 다시 정비하겠지?

 


한 계단씩 올랐는데 힘들다.
왜 그러지?


앗! 계단 간격이 너무 넓다!!!


아무래도 롱다리를 위한 계단인 것 같아~~

 


잠시 쉬어가자.
여러 표지판 아래 파란색 페인트 바탕의 노란색과 하얀색 글은 글씨가 작아 사실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걷는 이 길이 사유지란다.

'소무의도 '바다누리길' 참 아름답죠? 힐링 가득 만끽하시고 힘내세요!

당부 한 가지만 드릴게요. 이곳 '바다누리길'은 전체가 사유지로 산주(山主) 정명구 씨의 사유 재산을 무료로 개방해 주신 겁니다. 쓰레기는 되가져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겠죠!'

그러고보니 얼마 전 여행 다녀온 섬은 조각공원 안에 있는 해변을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물론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겠지만 해변을 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초행길인 관광객은 무조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산주(山主) 정명구 씨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걸었다.

 


계절 탓도 있겠지만 유독 소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소나무는 가녀린 가지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듯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한바탕 눈이라도 쌓이는 날에는 금방 부러지겠는걸?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일품이겠지만 그런 건 사치다. (버스 시간표를 기억하라!)


박정희 前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여름 휴양을 즐겼다는 고즈넉한 '명사의 해변'(솔직히 그정도로 고즈넉하고 좋은지 잘 모르겠음)
누가 지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이름이 지워졌다.

前 대통령의 휴양지였던만큼 그 고즈넉한 해변을 감상하기 위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닷가 저쪽 끝에서 청년 두 명이 뭔가를 하고 있는데, 처음엔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로 물러섰다.
예술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청년들을 피해서 얼른 찰칵!
前 대통령 휴양지의 고즈넉함을 채 느껴보기도 전에 사진만 두어 장 찍고 얼른 자리를 떴다.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 보자.

소나무가... 아예 누웠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면 이렇게 되는 걸까?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걸?

지지대라도 받쳐줘야 할 것 같다.

 


저 끝은 천국일까?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은 걷는 길이 재미있다.
편안한 데크 길인가 싶다가 보드라운 흙길로 이어지고 또 경사가 심한 계단인가 싶다가 또다시 데크길이 펼쳐져 걷는 즐거움을 준다. 조금 전과 달리 키작은 소나무가 많아 안정감 있다.

 


소무의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 하도정.
이곳에 앉아 바람을 맞았더니 지금도 찬 바닷바람이 폐 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바람을 너무 심하게 맞았나 보다.
가슴이 아프다.




지나간다 / 詩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애초에 돌탑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한 명 두 명 거들다 보니 이렇게 쌓이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돌멩이 하나 올리며 작은 소원을 빌었다.

 


소무의도 바다누리길에서 가장 힘든 길을 만났다.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었다. 발을 잘 못 디뎠다가는 그대로 굴러가겠는걸.
살짝 미끄러질 뻔해서 더욱 긴장하며 로프를 붙잡고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갔다.

 


무사히 버스 정류장 도착!
기사님이 알려준 대로 '요놈'을 타고 소무의도를 뒤로 한 채 광명항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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