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반 진담 반 '남자는 평생 세 명의 여자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세 명의 여자란 바로 엄마, 아내 그리고 내비녀다.
그런데 내가 오늘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내비녀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ㅎㅎㅎ(같은 여자라서? ^^)
눈이 내릴 거라는 뉴스를 듣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설경을 감상하기 위해 가까운 산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잔뜩 겁주는 날씨 예보와는 달리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산에 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검암역에서 출발하여 아라폭포 쪽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천광장 건너편에 있는 문화센터 주차장에 주차한 후 걸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검암역~아라폭포로 검색을 하니 내비는 걸어서 시천교를 건너서 아라폭포까지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시천교를 걸어 다녀서 별생각 없이 나도 걸어서 가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 매서운 찬바람 그리고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버린 빙판길.
내비를 100% 신뢰하며 알려준 대로 걷기로 했다.
시천광장 쪽 자전거 길을 걸을때면 아라뱃길 건너편이 궁금했었는데 최강한파이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날에 걷게 될 줄이야.
날을 제대로 잡은 거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상하다' 하면서도 '모르는 길은 내비의 말을 잘 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도 건넜다. 볼 때마다 움찔하게 되는 군부대 간판을 지나며 생각을 했다.
'내비는 가장 가까운 거리를 알려주는 거야'


암, 당연히 그래야지.
장난치면 안 된다, 내비야~!

최소한 아라폭포가 어디쯤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는 길은 내비의 안내를 철저히 신뢰하기로 했다.
도대체 얼마나 최단거리로 가려고 이런 시골길을 걸어야 하는 걸까?
내비를 보고 또 봐도 이 길이 맞단다.
그래, 믿어보자.
아니, 믿을게.


전에 가 본 적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여름날, 식사 후 바로 옆 카페에 앉아 반대편 시천광장 쪽을 바라보며 '저쪽은 어떻게 가는 걸까?'했던 적도 있었다.
바로 앞에 아라뱃길과 자전거길 그리고 방금 전 걸었던 시천교까지 한눈에 보이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지금 사진을 보니 NO.74라고 적힌 저 자전거 길을 걸었어야 했다. 그때 잠깐 고민을 하긴 했지만 도로 난간을 넘기엔 너무 체면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전거 길로 들어서는 입구까지 걸어가기엔 너무 아득해 보여서 그냥 도로 옆으로 걷기로 했다.
이 선택이 잘못되었다.
그런데 내비는 자전거 길이 아닌 도로 옆으로 걸으라고 했어. 왜 그랬을까?



넘어질까 봐 조심조심~
여기서 넘어지면 최소 장기 입원이다.
이 와중에 하늘은 너무 예쁘다.
하얀 물감으로 터치한 듯 구름은 무심히 흘러간다.


걷다 보니 區가 바뀌고 아라폭포가 있는 아라마루 휴게소에 도착했다.
반갑다. 휴게소!!!
확실히 건너편 자전거길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아라마루는 경인 아라뱃길 구간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써 일정 구간은 바닥과 난간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어느 곳보다 시원하고 깨끗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눈, 비, 강풍 등 기상 악화 시엔 이용이 제한된다.
오늘은 이용이 제한되는 셋 중 하나다.
그래서??
못 들어간다는 거다.



들어가지 못해 아쉽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야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이렇게 예쁜 걸 못 보다니, 오히려 다음에 다시 가야 할 핑계가 생겼다. (제발 기억해야 할 텐데...)



아라마루는 이용할 수 없지만 아라폭포는 갈 수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조심히 내려갔는데,
앗! 폭포 앞은 빙판길이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떼어봤지만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러웠다.
무리다.
내년 4월에 가동하는 인공폭포라 가봐야 볼 것도 없다고 스스로 포기를 종용했다.
인공폭포 앞 빙판길을 걸어가다 넘어지면 정말 겨울 내내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았다.

아라마루가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라마루 쪽에서 아라폭포 가는 길 입구도 약간 경사로인 데다 눈길이어서 막혀있다.
다행히(?) 아라폭포로 바로 내려가는 계단은 그나마 출입이 가능해서(사실 잘 모름. 별도의 안내 문구가 없어서 내려갔음) 가게 된 것이다.



자전거 길로 내려왔다. 왼쪽으로 갈 것인지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잠시 고민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누군가 왼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전거 길에서 저 다리를 건너갈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계단을 다 내려오자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전거 길에서는 다리를 건널 수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처음 걸어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정하고나니 발걸음은 빨라졌다.
해가 눈에 띄게 빠르게 기울었다.


자전거 없는 자전거 길을 걷고 있다.
너무 좋다ㅎㅎㅎ
사실 빙판길이 아니라면 겨울에 중무장한 채 걷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불속을 더 좋아한다는~^^)




쉼터에서 잠시 휴식.
건너편에 있는 시천광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마주하게 된 풍차도 예쁘다.
내가 건너가야 할 시천교가 바로 앞에 있다.
드디어 다 왔다!!!


처음에 내비가 알려준 시골길로 가지 않고 이번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천교를 올라갔다.
여전히 빙판길인데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심지어 굉장히 빠르다.
어떻게 빙판길을 자전거로 달릴 수 있지? 자전거 달인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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