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97일차. 눈 오는 날 도서관에서 놀기

문쌤 2022. 12. 21. 23:59

어제부터 이번주 토요일까지는 좀 특별한 장소를 다녀오고 어떻게 글을 써야겠다 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세웠었다...

과거형이다.

그러니까... 계획은 계획일 뿐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도 어제처럼 시린 바닷바람 맞으며 지난 1년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의 일이라는 것도 있다.

줄줄이 취소하고 보니 걷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심드렁해졌다.

...

...

그래도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걸어서 도서관 다녀온 걸로 오늘의 걷기를 대신하기로 했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서 대출 가능한 책을 검색한 후 신착 도서 코너를 둘러보며 아이쇼핑을 즐기는 게 도서관에서 하는 나만의 습관이다.

대출 가능한 책 청구 기호를 출력해서 책을 찾았다. 두 권은 찾았는데 나머지 한 권은 보이지 않았다. '대출 가능'인데 없는 걸 보면 아마 현재 도서관 내에 앉아 있는 사람 중 누군가 읽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면 대체할 다른 책을 한 권 골라야 한다. 오랜시간 쪼그리고 앉아서 책 구경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몇 페이지씩 읽다보니
자리에서 일어날 때 "아이고 다리야~"소리가 습관적으로 나왔다.

다리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입에 붙은거다.


예능 프로에 출연한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가 '혼잣말 하기'라고 하는데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주방에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차 한 잔 마셔볼까"라고 말하는게 그렇게 이상해?ㅎㅎ

도서관에서도 "이 거 한 번 읽어볼까?" 하며 책을 집어 들고는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이상하게 생각할 외국인은 한 명도 없고 열람실에 있던 도서관 이용객 중 그 누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행이다. ^^

신착 도서로 갔다.

도서관에서 새로 구입한 도서 코너다.

어떤 아저씨가 신착 도서 중 한 권을 서서 읽고 읽었다.

'서서 읽고 있었다'

그 말은 다른 신착 도서를 가리고 서 있다는 뜻이다.

비켜 달라는 의미로 옆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읽고 있는 책에 너무 심취해서 인기척을 못 들은 것인지 비켜줄 생각을 안 했다.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니므로 제일 귀퉁이에 꽂혀 있는 책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부동산'과 관련한 책 들 사이로 어린이 열람실에나 있을 법한 그림동화책이 꽂혀있었다.

'잘 못 꽂혀있는 거 아닐까?'

잘 못 꽂혀있는 게 아니었다.

무려 '시니어 그림책'이다.

'유아 그림책', '어린이 권장도서 시리즈', '청소년 권장 도서'는 봤어도 시니어를 위한, 그것도 그림책이라니...

궁금해서 시리즈 3권을 모두 꺼냈다.

'시니어 그림책' 전문 출판사 '백화만발'에서 출판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1권 '할머니의 정원', 2권 '엄마와 도자기', 3권 '선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편과 사별한 경자할머니, 도자기 수집이 취미인 엄마 이야기,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한 할머니 모습을 간결한 글과 예쁜 그림으로 표현했다.

출처: 도서출판 백화만발

'시니어'라는 단어만 빼면 일반 동화책 같다. 세 권 모두 읽어봤는데 그림책이다 보니 글이 너무 간결하다.

박완서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은 한 시대를 살아온 50~90년대 이야기라면 '시니어 그림책' 등장인물은 좀 더 세련된 할머니들 이야기이다.

만약 내 나이 일흔이 넘으면 이런 그림책을 볼까? ^^

'시니어 그림책'은 도서관에서 읽고 또 한 권의 그림책은 다른 책과 함께 대출을 했다.

도서출판 '오후의 소묘'에서 만든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의 <인생은 지금>이다.

이 책 역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우리나라 중산층과 외국의 중산층을 비교한 글이 한동안 화제가 된 적 있다.

몇 평 이상의 아파트, 몇 cc 이상의 자동차 등 자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모습과 달리 외국에서 생각하는 중산층은 1개 이상의 외국어, 1개 이상의 악기 배우기, 요리 배우기 등이었다.

"드디어 은퇴야! 이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어."

라고 시작하는 <인생은 지금>은 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 더 타격감이 크게 느껴졌다.

같이 외국어나 배울까?

아니면 악기도 좋겠다.

호수에 밤낚시를 가자

나도 요리를 배워볼까 봐.

그림책이니만큼 그림이 우선이겠지만 한 페이지에 한 줄 정도의 문장은 '우리나라 중산층과 외국의 중산층 비교'에 나오는 딱 그 '외국의 중산층'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듯 하다.

"드디어 은퇴야! 이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어."

"그럼, 좀 더 큰 차로 바꿔야지"

이게 아니었던 거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 계획을 세워야하는 지금, 내년엔 무엇을 배워볼까 고민을 해봐야겠다.

몸과 마음을 위한 공부 말이다.

"인생은 지금부터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