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99일차. 등린이의 첫 도전 1日 2山 (ft. 상아산, 관모산)

문쌤 2022. 12. 23. 23:52

첫 문장을 쓰려고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는 한참 망설였다.

한 이웃님으로부터 '인천' 하면 떠오르는 게 내가 다녔던 '공원'만 생각난다는 말이 떠올라서^^

그런데 오늘도 '인천' '공원'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포스팅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자수하여 광명 찾기로 했다^^

제목 그대로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1일 2산을 올랐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사기성 있는 제목인지는 인천 사는 사람들은 아마 다 알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지명 상 이름이 다르니 2개의 산인 것은 확실하다.(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그럼, 체감 온도 영하 20도라는 최강 한파에 1일 2산 오른 이야기를 풀어볼까~ ^^

동문으로 입장해서 인천수목원에 있는 납매의 안녕을 묻고 싶지만 오늘같은 날엔 환승도 번거로워 곧장 인천대공원역에서 내려 인천동물원이 있는 남문으로 입장했다.

체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산'과는 인연이 없어서 관심 두지 않았는데 산과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같은 요가반 회원 덕분에 '등산'이 아닌 낮은 산을 걷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혼자 산에 오르던 날, 하필 비가 내리는 바람에 관모산 화장실 안에 피신해 있다가 함께 있었던 이에게서 인천대공원 인근 산과 공원 그리고 수목원을 거의 매일 한 바퀴 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때 '상아산'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산을 알게 되었다.

높은 산이 아니기 때문에 산책 가듯 올라갈 수 있다며 상아산 올라가는 입구도 알려주었건만 듣고는 잊어버렸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관모산 어느 평지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알려준 동물원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면 상아산'이 있다는 표지판은 기억하고 있다.

상아산 입구는 몰라도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 관모산 평지까지는 갈 수 있으니 동물원 방향에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동물원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감성있는 수도가 나온다.

지난번엔 왜 못 봤을까?

눈이 전혀 녹지 않았다.

음... 험난한 산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평소답지 않게 다시 복장을 꼼꼼히 점검했다.

오늘 목표를 '다치지 말자', '감기 걸리지 말자'로 정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물원 울타리를 돌아 정자 닮은 쉼터에 도착했다. 맨발로 산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산행 준비를 하던 사람을 만난 적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오르막이다.

미끄러울 것 같은 구간엔 누군가 일부러 낙엽을 덮어둔 흔적이 역력했다. 덕분에 이때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생각보다 가볍게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런 쓸데없는 자신감이 차올라 등산을 취미로 하게 될까 봐 겁난다.

생각났다.

이곳에서 "왜 신발을 신고 걸으세요?"라고 묻던 맨발 걷기를 하던 사람을 만났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등산 규칙에 적혀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길은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 끼리의 암묵적 룰이었는데 산 중간 정도의 평지에서 만난 맨발로 걷는 사람들 말만 믿고 이 길을... 감히... 신발을 신고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처럼 했던 말이니 신경쓰지 않는다.

설마 이 추위에 지금도 맨발로 걷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맨발 걷기에 맹목적인 사람들은 아니길 바라며 '제발 만나지 말아요' 속으로 빌며 올라갔다.

다행히 햇볕이 잘 드는 곳은 눈이 녹아 걷기 수월했다.

평소엔 왜 몰랐을까?

굴곡없는 길의 고마움을... 인생도 그렇겠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순한맛의 평지가 있으면 매운맛의 빙판 계단도 있는 법.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평지를 벗어나자마자 내리막길 더하기 빙판 계단.

꼭 계단으로 갈 필요는 없잖아? 눈과 낙엽이 쌓인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쉬운걸?

그래, 맞아.

이 길을 올라가면 상아산이었던 거야.

내가 잠깐 사진 찍고 있는 사이에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바람처럼 내 옆을 지나가는 등산객.

사진 한 번 더 찍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장갑을 낀 그 짧은 순간에 이미 내 시야에서 벗어나고 없었다.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내가 헛것을 봤나 생각했을 정도다.

저 등산객은 넓은 산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니시니 1시간 반 동안 세 번 만났다^^

지난번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장소에 도착했다.

'설마 눈길 위를 걷고 있지는 않겠지' 싶다가

'그 정도 열정이면 눈길 위에서도 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그들은 없었다.

산에 오르는 동안 일반 등산객은 몇 명 만났지만 맨발로 걷는 사람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상아산까지 75m 남았다.

상아산은 151m의 낮은 산이지만 지난해 상아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사흘 만에 풀숲에서 발견된 70대 실종 기사를 봤기에 낮은 산이라고 해서 절대 만만하게(?) 보지는 않는다.(진심~)

산길이 익숙한 사람들에겐 동네 마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초행길인 사람들에겐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 자꾸 두 개의 갈림길이 나와서 헷갈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짜잔~ 드디어 상아산 정상 도착!!!

정상석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으레 '정상'에 도착하면 정자도 있고 그마저도 여유치 않으면 앉을 수 있는 벤치라도 있어야 하거늘 상아산 정상엔 아무것도 없이 휑하다.

배낭 안에 있는 두 개의 보온병은 바깥 구경 한번 못 한 채 하산해야할 것 같다.

심지어 시야도 답답하다.

발을 잘 못 디뎠다가는 산 아래까지 굴러갈 수도 있겠다...

동물원에서 올라오는 길 외에 상아산을 바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인 것처럼 보이는 길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발을 내디딜려고 하는데...

하는데...

우와~ 계단이 ...

너무 하얘~

무서워~

안 되겠다.

다시 돌아가야겠다.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그래, 아까 그 길보다는 이 길이 훨씬 더 안전해 보인다.

비록 나무뿌리와 큰 돌이 많지만 빙판 계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올라갈 때 봤던 반가운 표지판 앞에 섰다.

그냥 바로 내려갈까? 아니면 관모산까지 가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관모산까지 걷기로 했다.

정말 이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어김없이 나타난 두 개의 갈림길.

화살표를 믿고 오른쪽으로~

여기가 바로 계단 맛집이라는 관모산 올라가는 길이다.

'시간이 돈이다'를 영화 '인타임'으로 학습했다면 '걷기는 수명이다'를 과학적(?)으로 알려주는 계단.

수명이 1시간 29분 늘어난 걸 확인했다면 그것은 바로 관모산 정상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자랑스러운 관모산 정상적(162.22m).

관모산은 옛날 비를 피하기 위해 갓 위에 썼던 '갈모'를 닮았다 해서 갓모산이었다가 현재 갓 관(冠), 모자 모(帽)의 관모산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상석도 보통의 것과 모양새가 다르다.

"인천광역시는 현대적 지적측량을 최초로 실시한 도시입니다. 이 시설물은 지적측량의 기준이 되는 지적삼각점으로 국가의 중요 시설물이오니 인천시민의 자랑으로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명칭: 인천 22, 높이: 162.22m"

지적삼각점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심지어 지난번 관모산 정상에 올랐을 땐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

관모산은 그나마 정자와 벤치가 있고 시야가 확 트여 산에 올랐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바람을 가려줄 그 어떤 것도 없이 매서운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다 보니 경치 감상이나 차 한 잔 마실 여유가 없었다.

이제 내려가보자.

앗! 정상에서 몇 계단 내려왔을 뿐인데 벌써 갈림길이다.

고민할 필요 없다.

오늘은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니 아는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

조심조심~

처음 이 길을 알았을 때부터 첫눈에 반했던 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지난날의 부귀영화는 모두 떨군 채 꼿꼿하게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멋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고요해서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너무 좋아 최초로 영상을 찍어봤다 ^^(잘 올라갈지 모르겠다^^)

유독 향나무 숲엔 눈이 쌓이지 않았다. 향나무가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받았나 보다.

눈썰매장에 갈 필요가 있을까?

인천대공원이 바로 눈썰매장인걸!

미끄러질까 봐 땅만 보고 걸었더니 금세 처음 걷기 시작했던 어린이동물원 입구에 도착했다.

얼떨결에 1일 2산 했는데 쌓인 눈이 얼어서 조금 미끄러웠을 뿐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산에 있는 동안 3번 만난 등산객은 "매일 산에 오는데 날씨가 어제보다 더 풀린 것 같다"며 가벼운 패딩만 입으셨던데 젊은이(?)로서(그분은 어르신이었음 ^^) 몇 겹씩 껴입는 내가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매일 오르는 동네 산이지만, 나는 비 오는 날 처음 갔었고 오늘이 두 번째 산행인데 이 정도면 10점 만점에 10점??? ㅎㅎㅎ


ps. [100일 걷기 챌린지] 마지막 장소는 어디일까요?


납매 보러 또 가야지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