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밀키트 코너에서 한참 서성인 건 순전히 냉장고 속 두부 반 모 때문이었다.
국내산 콩으로 만들었고 크기도 큰 만큼 일반 두부보다 더 비싸게 산 두부였다. '국내산 콩으로 만들었으니 몸에 좋겠지' 라는 마음으로 산 두부는 연 이틀 찌개와 탕으로 변신해서 저녁 밥상을 책임져 줬다.
두부는 제 할일을 다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절반이나 남은 두부는 오늘 오전에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깟 손바닥만한 두부를 다 못 먹어서 방치했느냐 묻는다면, 수십 가지 변명을 댈 수도 있다.
연휴 때 집에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아이들도 하루 이틀은 '건강' 운운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수긍하는 척하겠지만 며칠 째 고기 반찬 없는 식탁에 기운 빠져서 쓰러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 제쳐두고 두부 반 모가 제 역할을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특히 두부를 좋아하지 않는 나 때문일 것이다.
이럴거면 차라리 모든 재료가 다 들어있는
밀키트를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마트를 돌다가 밀키트 코너 앞에서 멈춰 섰다.
갑자기 머릿속에 형광등이 '반짝'하며 켜지는 것 같았다.
두부 반 모 버린 것이 신경 쓰였는데, 잔머리를 굴리며 자기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밀키트 코너엔 동태탕과 대구탕이 진열되어 있었다. 동태탕보다는 대구탕이 더 맛있어 보였다.
대구탕 밀키트엔 무, 콩나물, 대구 다섯 조각, 곤이, 명란, 홍합, 새우, 백합, 미더덕에 홍고추와 썬 대파 그리고 양념소스가 들어있었다. 가격은 17,800원.
대구탕에 들어가는 해산물과 채소를 각각 따로 사는 것에 비하면 싼 가격이지만 밀키트를 처음 사려다 보니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었다. 그때 마침 담당 직원이 다가왔다.
"싱싱한 대구예요, 안심하고 구입하셔도 됩니다. 지금 할인 스티커 작업하려던 중인데" 하면서
원래 가격표 위에 할인된 스티커를 붙였다.
14,800원.
나 스스로 이 가격에 타협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카트에 담았다.
저녁에 대구탕을 끓였다.
재료마다 다듬고 손질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큰 냄비에 담고 끓이기만 하면 맛있는 대구탕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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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한 흰 살점에 명란과 새우까지 들어있는 대구탕.
가족들은 엄마가 밀키트 세계에 눈을 떴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다.
포장재를 모두 처리해서 증거 인멸했기 때문이다.
알면 또 어떠하리, 몸에 해로운 걸 넣은 것도 아니고 맛있게 먹었으면 된 거야.
솔직히 걱정이 되긴 했다. '맛이 이상하면 어쩌지?'
괜한 걱정이었다.
두부 반 모 버린 게 아깝기도 하거니와 요즘 트렌드에 맞춰 처음 사 본 밀키트 첫 구매는 결과적으로 대성공.
바쁜 맞벌이 부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 또는 1인 가구 등등 밀키트의 시장은 계속 확장될 것이고 그 종류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음엔 사진으로만 봤던 '밀푀유나베'를 사보고 싶다.
프레시지 더큰 밀푀유 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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