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이 쌓인 눈 위에 활짝 핀 주황빛 능소화가 있었지.
어찌나 이쁘던지...
깨어보니 꿈이었다.
요즘 계속 불면의 밤을 보내다 보니 어이없게도 이런 현실감 떨어지는 형상이 보이는군.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까지는 아니고 그냥 바다를 보고 싶었다.
서해에서 푸른 바다, 잉크빛 바다 이런 거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바다...
운좋게 벤치에 앉아 물멍 할 수 있다면 더없는 행운이리라.
#1. 영종도 예단포 둘레길
요즘 네이버 지도와 기싸움 중이다.
아, 글쎄... 예단포둘레길로 검색을 했는데 '예단포'로 가는 버스를 알려준 거다.
예단포 버스 정류장에서 예단포둘레길까지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둘레길 입구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는 걸 알고 어이없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잘 다독여서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예단포항 회센터(둘레길 입구)에 있는 예쁜 등대.
그러나 이곳은 등대가 아니라 화장실되시겠다!
안으로 들어가면 남녀 화장실과 수협 ATM기가 있다.
회센터답게 식당이 여러 곳이지만 얼마전 화재사고로 인해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웠다.
예단포항 회센터 주차장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과 열 걸음 정도 앞에 있는 예단포 둘레길 올라가는 계단.
계단에 얼음???
시작부터 만만치 않겠는걸!
어떤 아저씨는 화재 난 가게 가까이서 사진 찍던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모두 화마가 할퀴고 간 회센터 일부다.
살짝 오르막인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었다.
여길 못 올라가서 전전긍긍 대다가 옆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예단포 둘레길 시작 지점에서 이 정자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야자매트 위의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서 한 발 한 발 떼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정자는 영종도가 낳은 인물로 우리나라 2대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의 생가터다.
정자에는 '제2대 대법원장 조진만 생가터 정자'라고 적혀있다.
쏟아지는 햇살이 봄기운을 닮은 듯하다.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아이가
"엄마, 오늘은 따뜻해"
라고 말했다.
'이 날씨가 따뜻하다고?'
그자리에서 오늘 날씨를 검색해봤다.
0도란다.
0도가 따뜻한 날씨였다니ㅎㅎㅎ(이 동네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듯~)
정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진입하게 된다.
제주도 올레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예단포 둘레길을 걸어보자.
그늘진 곳이라 빙판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미끄러워서 가장자리로 걸으니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 빙판길을 걸으며,
넘어졌을 경우 그 이후의 일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하며 걸었다.
조심 조심 또 조심~
초록이 무성한 여름이면 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겠지만 낮은 언덕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긴장해야 하는 빙판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몇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 아저씨 한 명이 호기롭게 "미끄럼 타고 내려가면 된다"며 빙판길 위에 쪼그려 앉으려다가 그대로 넘어져서 일행들에게 웃음과 걱정을 안겼다.
예단포 둘레길은 적어도 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거다. 몇 걸음 떼고 나면 벤치가 있다.
물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물때를 못 맞춰 간조여서 느낌은 덜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갯벌과 시린 공기가 묘한 조합을 이루며 평온하게 해 주었다.
야자 매트가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햇볕이 비친 곳을 걸을 땐 비로소 둘레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자 매트 한 번 보여주고 다시 빙판길이다.
사진 속 눈 쌓인 벤치에 앉았을까 안 앉았을까?
바로 건너편이 북도면 신도, 시도, 모도다. 섬은 나를 기억 못 하겠지만 반갑게 아는 척하고 싶다.
신도, 시도, 모도에 다시 간다면 유명한 장소가 아닌 섬을 한 바퀴 걸어보고 싶다.
기다려랏!!!
같은 사진 같지만 나는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빙판길 다음엔 야자 매트... 야자 매트 다음엔 빙판길의 연속이다.
저 멀리 정자가 보인다.
드디어 미단정 도착!
사실 예단포 둘레길 시작 지점부터 미단정까지는 왕복 2.8km의 짧은 거리지만 빙판길이 많아 천천히 걸었더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정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셨다.
오늘의 노래는 김필의 '그때 그 아인'.
이 노래를 무한재생으로 틀어놓고 정자 기둥에 기대어 있으니 그제야 잠이 쏟아졌다.
눈 감으면 그대로 잠들 것 같았다.
노래는 계속 재생되고... 하루종일 같은 노래를 들었는데 가수가 직접 이렇게 불렀다면 성대 나갔을 듯...
잠이 들 것 같아 배낭을 챙겨서 정자 앞에 있는 길로 내려갔다. 미단교회 표지판을 보고 갔지만 일반 도로였고 저 멀리 처음에 봤던 예단포항 회센터 가는 입구가 보였다.
그럼 다시 예단포 둘레길로 되돌아가야지~
길 위에만 눈이 쌓여있는 게 신기하다.
뽀드득뽀드득 걸어보자!
다시 만난 빙판길.
난간 바깥으로 발자국이 보여 나도 난간을 건너 눈길을 걸었다.
미끄럽지 않다.
심지어 푹신 거리는 느낌까지 좋다. 하지만 난간 바깥쪽 걷다가 미끄러지면 방법이 없지~
버스를 기다리며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만조 때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갯벌 한가운데 있는 배 한 척.
다른 배들은 다 묶여있는데 왜 혼자 갯벌 한 가운데 있는지 궁금하다.
잠깐 미끄러지긴 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걷기 위험했다.
알았다면 다음으로 미뤘을 것이다.
<가고 싶은 곳 58,000개> 중 왜 하필 예단포 둘레길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물멍을 하러 갔는데... 음...
꿈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꽃은 못 봤지만 눈은 위험할 정도로 실컷 봤다.
아, 눈 속에 핀 복수초를 능소화로 착각했던 걸까?(복수초 못 봤음)
아니야... 분명 능소화였어 ^^
#2. 그때 그 아인... 김필
12월 31일까지 매일 다른 곡의 김필 노래를 들을 예정이다.
'그때 그 아인'이라는 곡은 가사가 좋아서 외워볼 생각에 가사도 검색하고 무한반복 해서 들었다.
하지만 음치라 가사만 보고는 따라 부를 수 없어 이번엔 악보를 검색했다.
판매하는 피아노 악보는 샘플로 첫 번째 페이지만 볼 수 있어서 다시 유튜브에서 악보를 검색했다.
악보를 보고 부르니 한결 나아졌다.(그렇다고 음치를 벗어난 건 아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노래를 외워서 부르는 건 중국에서 학교 다닐 때 장기자랑 하느라 10cm의 '쓰담쓰담' 이후로 처음이다.
시간은 벌써 나를 키우고
세상 앞으로 이젠 나가 보라고
어제의 나는 내게 묻겠지
웃을 만큼 행복해진 것 같냐고
'[은둔형 아줌마의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잘가요 2022년, 수고했어요 (37) | 2022.12.31 |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4D찾아 삼만리, 아바타2: 물의 길(ft. CGV부천) (35) | 2022.12.30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발표한 '12월 31일 전국 일몰과 1월 1일 일출 시각' (10) | 2022.12.29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는 자유, 전국 최장 '만수산 무장애나눔길'에 다시 가다 (18) | 2022.12.28 |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笔写)하기 (20) | 2022.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