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말일엔 1년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의식이 있었다.
'있었다'
과거형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밥벌이를 했고
금요일은 봉사활동을 했다.
토요일 오전엔 음악 단체활동을 했고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공연&영화를 보러 다니거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남편의 스탭이 되었다.
다이어리엔 이 같은 활동들을 깨알같이 적었고 12월 말일이 되면 1년 결산을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활동들은 매년 비슷했기 때문에 거의 변화가 없고,
영화 및 공연 관람 횟수와 제목, 강연 듣기 그리고 마라톤 대회 장소와 참가 종목(풀코스 또는 하프) 등이 1년 결산 주요 항목이다.
의무감으로 읽어야 하는 책 말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몇 권 읽었는가도 결산 항목의 중요한 부분이다.
호기롭게 1년에 100권 읽기를 목표로 했다가 몇 주만에 항복하고 다시 1년에 50권 읽기로 목표를 변경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결정이었다.
어디로 여행을 갔는가도 중요한 항목 같지만 그런 건 적지 않았다.
3월에 무엇을 했는지 7월 15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1년 결산을 하며 다이어리에 적힌 깨알 글씨를 읽으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산 나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견해서 위안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1년 결산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해 1년 계획표를 작성했다.
계획표라고 해봐야 별다를 건 없다.
밥벌이인 돈 버는 일을 좀 줄이고 싶었고(그러나 매년 안 됐음. 이 계획이 잘 이루어졌더라면 훗날 현타가 오지 않았을 수도...), 봉사활동 하는 곳과 기업을 연결시켜 후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계획표에 적었다.
기업(회사 차원 또는 각 부서 차원)은 지역사회 환원을 위한 봉사활동과 후원할 곳을 찾았고, 나는 봉사활동과 후원을 필요로 하는 몇몇 단체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연결시켜주는 일을 심심찮게 했었다.
서로 연결시켜주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그들이 한 일이 각 소식지에 실릴 수 있도록 원고를 쓰는 일까지 끝나야 비로소 '연결'의 역할은 끝이 난다. 이같은 활동이 '일'로써 지치지 않기 위해 미리 계획표에 넣어 적절히 배분하는 일도 중요했다.
2022년은 나에게 엄청난 시련을 준 해이다.
끝없는 어둠의 긴 터널 안에 갇혀 있다가 이제 그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 걷고 있는 중이다.
슬픔에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처음 수녀님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절대 '수용'의 단계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2023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수용'의 단계에 이르고 싶다.
잘가요, 2022년...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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