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악착같이 학교 다니며 공부하던
초짜 반일 때 이야기다.
수업시간에
"어떤 운동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으로 서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학생들은 모두 20대 초, 중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그들의 답변은 지극히 젊고 에너지가 넘쳤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학생들이 많았고
수업 끝난 후 또는 주말에
배구나 배드민턴을 한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는 일명 '움직이는 종합병원'인
나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사실 좋아하는 운동이 없고,
할 줄 아는 운동도 없기 때문이다.
발표 순서가 올 때까지 머리를 돌리며 생각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단순히 좋아하는 운동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중국어로 설명을 해야 했다.
만약 대회에 나갔다거나
친구들과 팀을 나눠서 경기를 했다면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중국어로 설명을 해야 했으니
초짜 반인 그때는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나는 '걷기'가 취미이자 유일한 운동이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걷는 게 운동이야?"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걷기도 운동의 일종'이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안 늙을 거 같지?
너희들이 언제까지 에너지가 넘칠 것 같냐?
너희들도 나이 들어 봐라, 당뇨, 관절염 없이
내 다리로 걷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인지 알게 될 것이다'
속으로는 그렇게 한국말로 생각하면서도 그걸 다 표현해 내지 못했으니
오죽 답답했으랴.
"걷기도 운동이다, 나는 저녁 식사 후 남편과 집 근처 호수 공원에 가서
1시간 정도 걷는다"
이 정도로 답변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더욱더 차 타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고
뚜벅이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 몸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걷는 사람, 하정우
그 당시,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을 때마다
사고 싶은 도서 목록을 적는데,
<걷는 사람, 하정우>를 넣은 건
그나마 '걷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열심' 그 자체인 하정우라는 배우에게 애정이 있어서였다.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재능을 펼쳐 보이는 하정우.
최근 프로포폴로 팬들을 의아하게 했으나
반응은
"하정우가?"
"왜?"
였다.
그러고는 어느새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행보가 신뢰를 쌓았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겉표지에 적힌 글 -
하정우는 하루 3만 보를 걷는다고 했다.
하정우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가끔 무기력증으로 정신 못 차릴 때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 정신 바짝 차리게 된다.
'나는 길 끝에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움켜쥐려고 걸은 게 아니니까.
지금도 나는 길 위의 소소한 재미와 추억들을 모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이 작지만
놀라운 비밀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걷다, 먹다, 웃다
걷는 사람, 하정우는 오롯이 걷는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아서 더 좋다.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도 상당히 재미있다.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다 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영화 속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먹을거리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디테일한 조리를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걷기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한번 해보면 일종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하게 된다.
내가 먹는 밥에 나의 시간을 들이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충만한 일이다." p148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p282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노력이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님을 깨닫는 순간들을 수없이 맞게 될 것이다.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은 순간에도,
틀림없이 그 최선을 아주 작아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엄청난 강도와 밀도로 차원이 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새로운 날들이 기다려진다." p286
요즘 다시 '걷기'에 취미를 가져보려 한다.
내 체력을 고려해 핸드폰에 6,000보로 세팅했다.
만 보를 맞춰놨으면 성취감이 덜했을 텐데
6,000보에 맞춰놓으니 나 스스로를 자주 칭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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