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들어도 좋고 낮에 들어도 좋지만 늦은 밤에, 특히 조용히 눈 내리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들으면 더없이 좋을 노래다.
노래가 아니라 한 편의 문학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고래 사냥>, <겨울 나그네> 등으로 유명한 故 최인호 작가의 詩에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 무려 1975년에 나온 노래다.
최인호는 에세이에 <밤눈>과 관련해 이렇게 회고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식 전날 밤 나는 빈 방에서 홀로 앉아 강산처럼 내리는 어지러운 눈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빨리 졸업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그러나 막상 내일로 졸업식이 박두하자 설레이는 불안과 미래의 공포로 할 수 만 있다면 다시 어린 날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내일부터는 마음대로 다방에도 들어가고 술집에도 들어가고 영화관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일부터는 모든 것이 자유로울 것이다. 머리도 마음 놓고 기를 수 있으며 신사복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졸업식을 하루 앞둔 내 가슴은 벅찬 기대와는 달리 불확실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밤을 새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는 아직도 내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멀리도 왔네
지금은 얼마만큼 떨어져 왔나.
아득한 먼 벌판에 눈 멎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잠만 들면 나는 그곳엘 간다.
눈발을 헤치고 옛이야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라
아니면 다시는 오지를 않지.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멀리도 왔네
<밤눈> 최인호 시
이 詩는 어떤 연유로 인해 곧 입대를 앞둔 송창식에게 전해졌고 두려운 미래를 고민하는 청춘은 최고의 명곡을 만들었다.
한 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 감고 귀 기울이면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못 듣는가
저 흐느낌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내 우는 소리
잠만 들면 나는 거기엘 가네
눈송이 어지러운 거기엘 가네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든 들고 오리다
아니면 다시는 오지도 않지
한 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눈 내리는 밤이 이어질수록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
<밤눈> 가사
당신은 못 듣는가/저 흐느낌 소리/흰 벌판 언덕에/내 우는 소리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저항을 노래했다고 평하는 이유다.
훗날 송창식이 회고하길,
"다시는 만들 생각이 없고,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 노래"라고 했다.
송창식의 가늘게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겨울 노래다.
오늘밤,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을 노래,
밤눈...
모두의 마음에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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