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덜꿩나무
이름표가 없다. 몇번이나 맞는지 확인해보고서야 비로소 덜꿩나무 꽃인 줄 알았다.
흡사 좁쌀을 닮았다 했더니 며칠 밤 지나고나니 하얀 얼굴을 내밀고 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춘다.
#2. 뜰보리수
내가 아는 보리수가 맞겠지?
빨갛고 주렁주렁 열린 그 보리수라니 상상이 안 된다.
이제 꽃을 봤으니 붉은 열매가 익을 때까지 자주 눈도장 찍어야겠다.
나는 너를 기다릴테니, 너는 네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3. 흰등
흰등나무 곁에 다가가니 마치 등을 밝힌 것처럼 주위는 온통 환하게 빛나고 있다.
흰 꽃잎이 뚝뚝 떨어지더니 잠깐 사이에도 빈 벤치엔 사연 잃은 꽃잎이 수북이 쌓였다.
꽃잎 떨어진 벤치에 앉으면 환하게 보일까 슬퍼보일까?
지난 3월, 신부의 드레스처럼 희고 고운 모습의 수양 매화에 반했더랬다.
어느새 푸른 융단을 두른듯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앙상한 가지로 파르르 떨던 지난 겨울부터 지켜봤으니 계절의 변화를 새삼 수양 매화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뿐 아니다. 자세히 보니 이파리 사이로 벌써 알알이 열매를 매달고 있다.
햇살 한 줌, 따스한 한줄기 바람에 매실이 잘 자라고 있다.
보드라운 솜털을 만져보려 조심스레 내민 손가락이 떨렸다. 행여 다칠새라 만지지도 못하겠다.
#5. 보라색 등나무꽃
보라색 구슬을 엮어놓은 것같은 보라 등나무꽃.
그 그늘에 앉아 5월의 여유를 느껴볼까 했다가 얼마 전에 이웃님의 등꽃 사진 한 장 아래 적힌 시 한 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인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시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시 한 줄 때문에 등나무는 5월의 싱그러움 대신 칼로 베인 손가락처럼 볼 때마다 아플 것 같다.
...
끝내 시를 찾고야 말았다.
(생략)
등나무꽃 그늘 아래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우리가 무엇을 이 지상에서
배불리 먹었다 하고 잠깐 등나무 둥치에 기대서서
먹을 내일을 걱정하고, 먹는 것이
슬퍼지게 하는가
등꽃 서러움은 풍성한 꽃송이 화려함만큼이나
덧없이 지고 있는 꽃그늘뿐이어서
다시 꽃필 내년을 기약하지만
우리가 등나무 아랫길 사람으로 여느 후생이
윤회를 이끌지라도 무료 급식소 앞 이승,
저렇게 줄지어 늘어선 행렬에 끼고 보면
다음 생의 세상
있고 싶지 않아라, 다음 생은
차라리 등꽃 보라나 되어 화라락 지고 싶어라
저 등나무꽃 그늘 아래 / 詩 김명인
ps.
사진 정리하면서 버릴까말까 고민했는데 며칠 내린 비로 꽃잎이 모두 떨어졌을 것 같아 몇 글자 더해서 포스팅했다.
다음날 보니 글은 사라지고 사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쓰다보니 전날 쓴 문장, 단어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사진마저 지울까 하다가... 첫감정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몇 글자 더해서 포스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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