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문해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의 작품 전시회를 갔다가 코끝이 시큰해진 경험이 있어서 그뒤론 문해교육 전시회가 있으면 갤러리 들어서기 전에 깊은 심호흡부터 하곤 한다.
하지만 눈가는 짓무르고 목젖까지 차오르는 뜨거움을 꾸욱 눌러야 하는건 여전했다.
그런 꽉 찬 감동을 다시 느낄 전시회를 찾았다.
오늘도 행복한 전시회를 보러 가보자, 쓔슝~^^
2023년 인천광역시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은 초등1,2,3단계와 중등 학습자들의 작품이 <문해, 배움은 늘 신기하다>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렸다.(2023년 12월 1일~12월 7일)
세상이 보인다/詩 안복순
학교 간다는 생각에 밤잠을 못잤다
발걸움은 가볍다 내 못배움은 서럽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글과 새로운 단어들을 알게 되니
세상 모든 것들이 달라보이네
거리에 걸린 간판과 광고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공부를 시작
할걸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부하니 안보이던 세상을 보이는것 같다
들켰다 / 詩 윤영분
벽정 속에 숨겨놓은
책가방을 들켰다
막내며느리한테 들켜렸다
못 배운 시엄마라고 흉보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같았다
학교 가서 열어본 가방 속에
깍두기 공책이랑 깎아놓은 연필이랑
이제 안 숨겨도 되겠구나
며늘아가야 고맙구나
졸업장/ 詩 윤승자
아버지 병수발 하느라 못가게한 학교
책가방 메고 가는 동생의 뒷모습
동생이 들고와 자랑하는 졸업장
나는 그저 부러웠다.
69세의 나는 이제 평생학습관에 다닌다
내년에는 나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내게 졸업장을 자랑하던 동생에게 보여주고
아버지 병수발 하라고 학교 안 보낸 엄마에게
자랑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앞으로 꽃길만 걷는 내 모습 생각만 해도 기쁘다
우리딸/詩 김점덕
우리딸 초등학교 보내놓고 학교에 다녀오면
나한테 숙제를 가져와서는
내 딸 하는말
엄마 친구는 자기엄마가 많이 가르켜준대
그소리를 듣고 배우지 못한 내가
얼마나
생각해보면 가끔씩
눈물이 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어느 전시회에 가서도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눈에 띄는 작품 위주로 볼 뿐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다 보진 않는다.
하지만 <문해, 배움은 늘 신기하다>는 모든 작품을 천천히 다 읽어봤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렸다.
어릴때 학교에 가지 못한 설움과 뒤늦게 배움에서 오는 즐거움이 한데 어울려 기쁨과 슬픔이 뒤엉켜있다.
그 중 <그때 그 사람들, 고마웠습니다> 서은자 님의 글에서 감정이 폭발해서 코를 훌쩍 거렸다.
젊었을때 고려볼링장 식당에서 직원들 밥을 해주는 일을 했다.
내 생일날 직원들한테서 생일 축하 카드를 받고는 도망치듯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다.
글을 배우면 읽어보려고 30년 간 간직해오던 빛바랜 생일축하카드
이제야 한 자 한 자 더듬더듬 읽어본다.
글을 조금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착한 사람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그때 생일 축하해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글을 배우면 읽어보려고 30년 간 간직한' 생일 카드.
30년이 긴 세월이지만 아이들 키우다보면 30년은 금방 지나가서 자신을 돌 볼 시간도 형편도 안 되었을 것이다.
소중하게 간직한 30년 전 빛바랜 생일 카드를 첨부해서 쓴 글을 보고 가슴이 무너졌다.
아무도 없었다면 내 감정대로 울었을 지도 모른다.
'콩나물 대가리 음표도 알고 싶고/ 악기도 하나 다루고 싶어요' 라는 나정옥 님의 <늘 감사>에 나오는 시처럼, 음표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는 멋진 인생을 응원한다.
ps 1.
문해교육은 의무교육을 받지 못해 학력이 없는 성인을 대상으로 학력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으로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ps 2.
그저 다른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을때 찍은 몇 작품만 올렸을 뿐 좋고 안좋고의 구분 없이 전시회 작품 모두 감동이었다.
그 중 몇 편의 시는 따로 옮겨적었는데 맞춤법과 상관없이 지은이가 쓴 그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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