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있는 한 대학교수는 '행복학' 교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교수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행복을 찾아 누릴 수 없다는 지론을 강조한다. 나는 그 교수가 크리스천인가 살펴보았으나 종교적 신앙과는 관련이 없었다. 바이블에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교훈이 명시되어 있다. 그 교수 자신도 누구를 만나든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사는 인상을 풍긴다.' <백년을 살아보니 p38 >
동대문구청에서 마련한 김형석 교수(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강연 소식을 듣자마자 책꽂이에서 (서재 정리하면서 거의 다 버렸지만 그 중 살아남은 몇 권 안 되는 책 중 한 권) <백년을 살아보니/도서출판 Denstory>를 꺼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라는 소제목은 평소 김형석 교수의 행복론을 짐작할 수 있는데, 문장 첫머리에 제2의, 아니 제4의 고향 쯤으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를 우리 동네 대학 교수를 언급한 것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1920년 출생, 올해 104세가 되었을 김 교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니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이며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하루를 모두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김형석 교수 강연 들으러 가보자,
<백년을 살아보니> 책을 가져가서 사인도 받아야지~ 쓔슝~^^
너무 일찍 가는 바람에 동대문구청 근처 카페에서 시간 때우다 20분 전에 강연장에 들어섰다.
김형석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강연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이날 모인 사람들이 500명이 넘는다고 하니 강연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짐작할만하다.
빈자리가 있는지 빠르게 스캔하다가 앞자리에 비어있는 의자 발견하고, 코트 자락 휘날리며 빈 의자로 돌진~~~!!!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주인 없는 자리다.
동대문구청장의 인사말이 끝난 후 김형석 교수가 에스코트 받으며 입장했다.
아~
'김형석 교수의 강연을 듣는다'에서 생각이 멈췄나 보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올해 104세의 김 교수가 1시간 반 정도 되는 강연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제서야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마이크를 잡은 김형석 교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강연을 이어갔다.
철학자에게서 듣는 행복학은 꽤나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1920년대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인생 이야기는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듣는 옛날이야기 같았다.
우리에겐 교과서 속 인물로 더 유명한 윤동주 시인, 황순원 소설가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자니 그제서야 100년의 세월을 실감할 수 있었다.
"50살쯤 되면 기억력이 약해지는 반면 사고력은 높아지는데 경험상 80살 까지는 가능하더라"라고 하자 조용히 경청하던 장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마도 강연 듣는 사람들 평균 연령이 높아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이었을 것이다.
그 웃음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100년 넘게 살고 있는 김형석 교수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철학적인 심오한 비법이 있을까?
먼저 책을 많이 읽는 것이야말로 늙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전했다.
"독서의 힘은 해 본 사람만 아는 능력"이라며, "끊임없이 독서하고 공부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성장할 수 있으며 정신이 늙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어떤 정치인을 보며 "책이나 좀 읽었으면 저런 말을 안 할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니 김 교수는 그 정치인이 얼마나 언짢고 안타까웠을까 미루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70대는 인간이 가장 성숙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이며, 80대 이전엔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취미활동을 하고 일(또는 봉사)을 놓지 말라고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 교수의 조언을 깊이 새기고 따르다 보면, 비록 몸은 늙지만 정신은 계속 성장하겠지?
나는 100년 살 자신이 없는데...
김 교수의 강연을 들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강연 끝난 후 사람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들었다.
모두들 김 교수가 쓴 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받으려는 것.
'연세도 있으시니 사인회는 생략하겠지' 싶었는데,
웬걸~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었다.
나는...
사인을 못 받았다;;
왜 못 받았을까?
강연 전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분명히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한 책 <백년을 살아보니>가 없는게 아닌가~;;
아~~
어쩔~~!!!
거실에
놓고 왔다
!!!!!!!!!!!!!!
책상에서 몇 페이지 훑어보며 '사인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챙겨가야지' 싶어서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분명 아침까지도 생각했었는데...
'가방에 넣어야지...'라고 생각한 게 그만 '넣었다'라고 인식했나 보다.
망해쓰요~~!!!
ps.
우리 동네 구청장 이름도 모르는데 하물며 옆동네 구청장을 어떻게 알겠는가.
뒷자리에 앉았더라면 구청장의 인사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았을 테고 어쩌면 눈길 한번 안 줬을 것이다.
앞자리에 앉았다는 특권으로 단상에 올라선 구청장을 보며 세련되지 않은 그의 말에 오히려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동대문구청장 사진을 찍은 이유는 다름 아닌 신발 때문이었다.
양복에 구두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장에 어울리는 편한 운동화를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있을텐데 투박한 운동화를 신었다.
자세히 보니 운동화가 아니라 등산화에 가깝다.
'최소한 발로 뛰면서 열심히 일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우리 동네 구청장님은 평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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