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직업인 사람이나 일반 주부 그리고 자취하는 학생 및 사회초년생들도 주방에서 칼로 요리하며 한 번도 안 다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건이 고장나거나 닳으면 고쳐 쓰는 게 맞는데 주방 칼은 알게 모르게 시나브로 무뎌지다 보니 나도 거기에 장단 맞춰 무뎌진 칼날에 익숙해져 버렸다.
정 답답할땐 다이소에서 산 칼 가는 기계에 갈아보기도 하고 급할 땐 접시 바닥에 몇 번 문질러보기도 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무딘 주방칼로 고기를 자르는 날엔 칼로 고기를 써는 게 아니라 힘으로 고기를 뜯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날이기도 했다.
오래전에 왼손 엄지손가락 바닥을 칼로 베인 적이 있었다.
종잇장도 사~악~! 소리를 내며 벨 정도로 칼날이 세워진 주방칼로 소고기 뭇국을 만들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다.
무를 자르다가 왼손 엄지 손바닥을 베었다.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피가 났으나 그렇게 깊은 상처는 아니어서 남편이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며칠 지나 상처는 아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왼손 엄지손가락이 붓는 게 아닌가.
엇! 이게 아닌데...
그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아문다고 상처가 나은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겨우 아문 상처를 뜯어냈다.
생 살을 뜯는 아픔이란...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시더니,
"나중에 뭇국 끓이려고 여기에 남겨뒀어요?" 하셨다.
"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무 파편이 상처 안에 들어가서 성이 났는데 이제 괜찮을 겁니다"
아주 작은 상처지만 살을 헤집었기 때문에 실로 꿰매는 과정을 거치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겨우 아물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칼을 갈았다!
칼날이 잘 들면 혹시 또 그 같은 일이 생길까 봐 무딘 칼에 장단 맞춰 살아왔건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칼은 어디에서 갈아야 하는가.
재래시장 가는 날이면 칼 가는 가게를 찾아 두리번거려보기도 하고, 시장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여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라는 답변만 들었다.
그러다 현대인답게 검색 찬스를 쓰기로 했다.
그럼 그렇지~
초록창엔 없는 게 없구나.
집 주변에 전문적으로 칼을 갈아주는 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그중 '명장' 칭호를 받은 가게로 가기로 했다.
길을 놓칠 정도로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는 소박했으나 대한민국 칼 명장 1호답게 각종 명장 인증 상패가 즐비했다.
먼저 온 손님은 칼과 가위를 박스채 가져왔다. 단순히 칼 가는 가게인데 수요가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가 아차! 했다.
아마 식당 사장님인 듯싶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을 살펴봤다.
보는 사람에 따라 흉기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칼들은 예술작품 그 자체였다.
내가 가져간 칼과 가위가 모두 외국 브랜드인 게 부끄러울 정도로 MADE IN KOREA가 새겨진 자체 브랜드' 天地刀'가 위풍당당하게 가게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칼천지, 사장님의 칼 가는 솜씨와 사모님의 친절함으로 계속 번창하리라 믿는다.
ps. 칼 가는 가격 : 주방칼 3,000원, 과 도 2,000원, 가 위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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