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통해 몇 차례 말했듯,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데다 그동안 은둔형 인간으로 살다가 바깥 활동을 한 지 이제 6개월 남짓 되었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다가 취미 활동으로 배우고 있는 캘리그라피 교실에서 매주 인사를 나누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이제는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야, 혹시 노래 잘해?"
늘 명품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소기업 대표인 언니는 귓속말인 듯 귓속말 아니게 나에게 물었다.
"아뇨... 저 음치예요"
여기서 대화를 멈추면 언니가 저 말을 꺼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언니, 노래나 합창 배우세요?"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언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가수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데 노래 실력이 팍팍 늘어서 너무 좋아, 자기도 해볼래?"
"ㅎㅎㅎ 아이고~ 제가 엄청난 음치라서 범접불가 영역에 대해서는 아예 도전을 하지 않아요~"
한 번은 두 번째 수업시간이었나 세 번째 수업시간이었나, 그즈음에 한 분이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댄스 프로그램에 자리 비었는데 오면 좋겠다"
"ㅎㅎㅎ 저는 몸치라 춤은 전혀 못 춰요"
"아휴~ 배우면 되지, 동작도 어려운 거 하나도 없어요. 우리 같이 해요"
그 뒤로 몇 번 더 의사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했더니 지금은 아예 묻지 않는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계시는 청일점 어르신 회원도 어느 날 나의 글씨를 지긋이 보시더니 물었다.
"정통 서예를 배우는 게 좋지, 서예 한 번 배워볼 생각 없어요?"
"어르신, 요가 재밌는데 같이 하실래요? 요가하시면 저도 서예반 들어갈게요"
ㅎㅎㅎ 그 뒤로 서예 얘기는 꺼내지 않으신다.
과도한 관심 같지만 사실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이사 왔다고 했더니 다들 '예쁘게' 봐준 것이다.
이런 친절은 네이버도 예외가 아닌듯하다.
재즈 공연 보고 왔다는 얘기를 블로그에 몇 줄 쓴 것 밖에 없는데 네이버도 알고리즘이 있는 것인지 며칠 전부터 계속 우리 동네 스윙재즈 동호회가 휴대폰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스윙재즈를??
내가???

몸치!
몸치!!
몸치!!!
이래 봬도 내가 주제 파악은 좀 하고 산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보기로... ^^

오후 3시가 넘어서 휴대폰을 켰다.
그 시간까지 걸음수는 "0"

걷기 챌린지 시작한 이후 이런 날은 처음이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마트에 잠깐 다녀온 후 <주차장에서 걷기 - 산책길 왕복 5회 걷기 - 앞동산 왕복 걷기 - 다시 산책길 걷기>를 했다.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었다.
따로 관리를 하는 장소가 아닌 탓에 수북이 쌓인 낙엽.
산책길을 걸을 땐 정확히 돌부리였는지 흙 밖으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였는지 모르겠으나 쌓인 낙엽 때문에 무심코 밟았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할 때마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산책길 왕복 1회 걸을 때마다 바위 위에 돌멩이 하나씩 올렸다.
산책하는 길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 ^^
짧은 산책길을 걷다 보면 왕복 몇 회 걸었는지 잊어버려서 돌멩이로 표시를 하는데, 나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다섯 번.


산책길 걷기를 마치고 나서 산으로 올라갔다. 너무 낮아서 산이라기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곳이다.
겨울 해 질 녘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럴 때 좀 무섭지.

뛰다시피 걸었나 보다.
숨이 가빠서 헥헥거릴 때마다 마스크가 크게 들썩거렸다.
그런데 눈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속눈썹이 무거웠다. 울고 있는 것도 아닌데 속눈썹이 촉촉했다.
눈에 이상이 생겼나?
걷기를 마치고 예상했던 걸음수를 확인한 후 아파트 로비층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거울을 봤는데,
어머나! 속눈썹과 눈썹에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게 아닌가.
이대로 얼면 고드름 되겠는데?

걷기 챌린지 아니었으면 절대 절대 절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평소에는 잘 몰랐는데 하루 6,000보 걷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일 걷기 챌린지]82일차. 첫눈 오면 만나자고 약속 했던가요? 꽃개오동 선생 (feat. 인천수목원) (15) | 2022.12.06 |
---|---|
[100일 걷기 챌린지]81일차. 삥뜯기 - 보고 배운대로 실천하기 (19) | 2022.12.05 |
[100일 걷기 챌린지]79일차. 열정이 식어가는 중? / 탕웨이 수상 소감(중국어) 필사 (21) | 2022.12.03 |
[100일 걷기 챌린지]78일차. 사진에 관심을 갖다/ 인천시민공원사진가 전시회(청라블루노바홀), 청라호수공원 걷기 (30) | 2022.12.02 |
[100일 걷기 챌린지]77일차. 힐링이 필요할 땐 도서관에서 놀기 (26) | 2022.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