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지...
오라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만나야 한다면 눈이 내려도 가야 하지 않겠나.
먼저, 오동 나무에 대한 추억을 빼놓을 수 없다.
아주 오래 전에 아는 분 집에 점심 초대를 받은 적 있다. 도시와 떨어진 곳에 살며 부부 모두 시민협과 환경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인연으로 초대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혼자 가게 되었다.
시골집이다.
시멘트 마당을 일일이 손으로 깨서(신혼 때 전세 살던 집을 매매한 후 마음대로 고치는 자유를 얻음) 각종 야생화와 과일나무를 심어 계절 별로 눈요기와 먹거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마법의 마당이 있었다.
주방에서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툇마루에 앉아서 마당 구경과 담장 너머로 보이는 마을 구경도 했다. 저 멀리에 보라색 꽃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보이는 꽃이 라일락인가요?"
"오동나무예요. 보라색 꽃이 라일락이랑 비슷해요"
슴슴한 나물 반찬이 많은 밥상인데 대부분 낯선 나물이다.
"오동나무 새순 따다가 만든 나물이에요."
확실히 오동나무 새순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 내리는 날, 인천수목원에 갔다.
그냥 갔을 리 없다. (계획이란 걸 세웠지 모야~^^)
오동나무 보러 갔다.



그냥 오동나무가 아니다.
<김민철의 꽃 이야기 142회>에서 언급한 꽃개오동나무다.
김 논설위원 역시 '꽃이 거의 흰색'인 꽃개오동나무는 인천수목원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한 걸 보면 인천수목원에 있는 꽃개오동나무는 상당히 특별한 나무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동물원이 있는 남문으로 가는 교통수단이 편리하긴 한데 수목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에너지 고갈될까 봐 일부러 정문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겨울의 인천대공원은 너무 썰렁했다. 오히려 한적해서 더 겨울 느낌이 났다고 하면 말이 이상할까?

정문을 지나 곧장 왼쪽에 있는 인천수목원으로 향했다.
인천수목원 설명 자료에 의하면,
인천수목원은 인천의 자생식물과 도시녹화식물 전시를 중심 테마로 식물을 수집, 보전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숲에서 즐길 수 있는 휴양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곳이다.
총면적은 255,859㎡로 3개 지구, 43개 전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1,363종 228,000본의 다양한 식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꽃이 피는 계절이라면 꽃 사진을 참고하여 찾을 수 있겠지만 모두 앙상한 가지만 곧게 뻗은 채 홀연히 서있는 1,363종의 나무들 중 과연 꽃개오동나무를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이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그나마 다행인 건 수많은 꽃과 나무들 모두 이름표를 갖고 있다는 것!!!



밤새 눈이 내려서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양지바른 곳은 모두 녹았고 그늘진 곳곳엔 먼저 걸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뚜렷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255,859㎡에서 꽃개오동나무를 찾아볼까?



너도밤나무, 들메나무, 무스카리, 윤노리나무, 찰피나무, 신갈나무...
한 그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무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걸었다.

납매를 만났다.
중국에서 매년 1~2월이면 연례행사처럼 납매를 보러 갔었는데 인천수목원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조만간 노란 매화꽃이 피겠지?

꽃개오동나무 찾아 삼만리 중인데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전문가는 사물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데, 사진을 모르는 내가 봐서는 삼각대 아저씨가 뭘 찍으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봉황의 깊은 뜻을 황새가 어찌 알겠는가...
꽃개오동! 너 어디 있니?
수목원 전체를 샅샅이 살펴봐야 하는 걸까?
수목원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많은 꽃과 나무 이름 부르다가 금세 지쳐버렸다.
히페리쿰 칼리키눔, 몰리니아 칼 푀르스터, 회양괴불나무 모스그린, 휴케라 캉캉, 모로위사초 실버 셉터, 흰말채나무 케셀링기, 플록스 니발리스 알바...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너무 어려워서 자꾸 혀가 꼬인다.
이름만 봐서는 도무지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지 상상이 안 되는 꽃과 나무들.

걷다가 '라일락'을 만났다.
바싹 마른 말라깽이 나무여서 이름표가 아니었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거다.
그나마 아는 꽃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 옆엔'오동나무'가 당당하게 서있다.
오호라~ 내가 아는 나무가 또 있구나.
그런데 좀 이상하다.
라일락과 오동나무는 꽃이 비슷해서 헷갈릴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몇 걸음 올라가니 그곳에 적힌 설명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바로 '비교 식물원'이었던 것.
비교 식물원은 식물의 형태와 특성이 유사한 식물을 비교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는 곳이었다.
수목원에서 깨알 재미를 찾다니...^^
봄이 되면 꽃들이 잘난 체 하느라 아우성이겠군.
상상만 해도 즐거운걸?
그나저나 꽃개오동나무는 언제 찾나요?
아마도... 못 찾을 것 같지?
수목원 입구를 들어설 때만 해도 수목원 지도를 보며 샅샅이 걸었는데 금세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이 길은 내가 걸은 길인가 아직 안 걸은 길인가' 헷갈렸다.


드디어 발견!!!
꽃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분명 꽃개오동나무 이름표를 가진 나무다.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가지만 앙상한 꽃개오동나무 사진을 수없이 찍었다.
꽃 피는 시기를 잘 맞춰서 와야 할 텐데... 아무도 모르게 살짝 피었다가 슬그머니 지는 건 아니겠지?
"꽃 필 때 꼭 알려주렴. 010- xxxx - "

오늘 수목원 방문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후로는 자유다.


커다란 갈참나무 아래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목원 구경 다녔다.



날씨는 춥지만 파란 하늘과 구름이 10,000% 힘을 발휘한 날이다.
꽃이 없으면 어떠리, 하늘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확 트인다.






지난번 찜 해 둔 온실에도 갔다.
1994년에 조성한 온실은 1온실(열대, 아열대 식물)과 2온실(다육식물, 선인장)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온실을 다녀봤지만 모두 비슷한 식물 구성이어서 '인천수목원 온실'만의 새로움은 없었다.
1온실과 2온실 사이에 있는 중앙 유리창을 활용하여 요즘 유행(예: 제주 동백 액자 뷰)하고 있는 '액자 뷰 포토스폿'을 만들면 어떨까.
백만불짜리 유리창을 그냥 놔두다니... 아깝다.

온실을 나오니 자연스럽게 호수가 있는 쪽으로 걷게 되었다.
처음 걷는 길이다.
'남동 둘레길'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우연히 걸었는데 둘레길 한 부분이었던 적은 있지만 마음먹고 둘레길을 걸어본 적이 없어 '남동 둘레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라서 그냥 무시하고 호수만 한 바퀴 걷기로 했다.

정말이지... 오늘은 날씨가 10,000% 열 일 한 날이다.
일부러 그림을 그리라고 해도 이렇게 예쁘게 그리지는 못할 것 같다.

좀 전에는 소박한 '남동 둘레길' 팻말이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크게 적혀있다.
아무리 유혹해봐라.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은 꽃개오동을 만나러 왔나니...

걷다 보니 동문 도착!
혹시라도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헤매게 될까 봐 아예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예~맞아요, 심각한 길치예요...


환경미래관. 다음에 다시 올게요.

백범 광장... 네! 다음에 꼭 다시 올게요.

경쟁이 심해 한 번도 못 앉아본 흔들의자.
드디어 오늘 앉아본다^^

두 번째 보온병에 담긴 차를 마셨다.
감기 걸릴까 봐 누가 밀면 앞으로 굴러갈 정도로 두껍게 옷을 껴입어서 춥지 않은데 해가 짧아서 아쉬웠다.
목재문화체험장, 환경미래관, 백범광장.
다음에 다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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