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83일차. 무모한 도전

문쌤 2022. 12. 7. 23:18


요가 시간에 플랭크 자세 하다가 무너졌다.
원래 허리가 안 좋아 굉장히 조심하며 살고 있는데 남들 다 하는 동작이 안 되다니...
아, 슬프다...

운동 끝나고 나오면서 회원들에게 하소연했더니
선생님이 숫자를 너무 느리게 세는 바람에 팔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한마디씩 했다.

플랭크 자세를 한 후 선생님이 10까지 숫자를 세는데
하나, 둘, 셋~
이렇게 세는 게 아니라

하~~~나~~~앗,
두~~~우~~~울... 이러시는 거다.

세상의 시계는 똑같이 째깍거릴 텐데 어떻게 이렇게 느리게 셀 수 있지?



오늘도 걷는다


집 앞 산책길이나 동네 한 바퀴 걸으면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가능하면 새롭고 재미있는 '걷기'를 하려고 하는데, 동네를 잘 모르다 보니 집밖은 늘 새로운 여행지 같다.
오늘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100m 남짓한 높이의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도 전!!!


참, 산 이름은 안 적을 거다.
멋모르고 군 초소와 부대가 있는 산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몰랐으니까^^)





위치도 가깝고 하산 후 차를 타고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오늘은 직접 운전해서 주차장 비슷하게 생긴 공터에 주차했다.
요즘은 어느 산이나 공원 모두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군데군데 화장실이나 벤치 정도는 있다.

이곳은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통행이 불편했다.
(군부대가 있어서 그럴걸요~^^)

그러나 지도를 보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등산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랏! 길이 막혔다.
등산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되었던 터라 혹시 등산로가 낙엽에 묻혔나 싶어 쌓인 낙엽더미를 이리저리 발로 헤집고 다녔다.

누가 보면 산삼이라도 캐러 다니는 걸로 오해했을 거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나아갈 수 없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났다. 내가 올라간 길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이곳은 일반인이 다니는 길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일반 등산객이 다니는 산길을 알려주었다.
그나마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헬기장까지 올라가는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도 '일반인 출입 금지' 표시가 얼마나 많은지 군 초소 앞을 지날 때마다 쫄보가 되었다.

이 산은 워낙 낮은 산이어서 등산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인근 두세 개의 산을 한 세트로 다닌단다.

나는 오로지 이 산만 다녀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헬기장에 도착하자 등산객은 다른 방향으로 갔다.

헬기장에서 다시 되돌아가도 되지만 10분 정도만 내려가면 초등학교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곳은 내가 알고 있는 곳이어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가지에 매달린 마른 떡갈나무 이파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거리면 그 소리에도 놀라 간이 쪼그라들었다.

가방에 칼 하나 정도는 갖고 다니니까 무서울 게 없어 보이지만 오가는 등산객 한 명 없는 게 오히려 더 무섭다.
그냥 되돌아갈까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다.


지금 봐도 너무 특이하게 생긴 소나무.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면 옆으로 누운 소나무도 제대로 감상했을 텐데...
왜 유독 혼자만 눕게 되었을까?

산길을 거의 다 내려갔을 무렵 어디선가 큰소리가 들렸다.
바로 산 아래에도 군부대가 있었던 것.

얼른 발길을 돌려 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니 이번엔 족히 300평은 되어 보이는 산을 깎고 다져서 만든 넓은 땅이 보였다.
넓은 땅 후미진 곳에 비닐하우스 같은데 집이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야생미 뽐내는 사냥개 스타일의 견선생이 마구 짖어대자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여자다.
분홍색 잠옷 바지를 입고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짖어대는 견선생을 사이에 두고 약 100m 간격으로 그녀와 나는 서로 경계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약한 사람이 지는 거다.

남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 같아 먼저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손도 흔들었다. 어떠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멀어서 말을 해도 안 들릴 테니까...

눈치 없는 견선생은 계속 짖어댔다.

등산길 위치만 확인하려고 간 건데 난감했다. 또 다른 길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길을 통과해야만 산에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다면 그 길로 내려가 시내버스를 탔을 것이다.
하필 오늘 운전해서 가다니... 차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다시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그녀는 내가 산길로 다시 올라가고 있는데, 자기 시야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걸어가면서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내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사냥개 같은 견선생이 자기 목줄을 풀고 달려들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군 헬기가 내 머리 위에서 날아다녔다.(사진을 찍었으나 잘 찍히지 않은 점도 있지만 올리면 안 될 것 같아 생략함)
다시는 이 산에 올라오지 말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산 정상에 올라 정상석 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따뜻하게 마시려고 보온병에 차도 챙겼는데 생각과 다르게 펼쳐진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올라올 때 봤던 주차된 차량 몇 대는 이미 빠져나가고 없었다.
나는 훨씬 아래쪽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갔다.


네이버와 다음도 접속이 안 되고 가족톡방에 사진을 올렸는데 전송이 안 되었다.

내가 이 산에 너무 많은 걸 기대했었나?


무사히 집에 도착했으나 급격히 체온이 떨어져서 맥을 못 추고 누웠다. 퇴근한 딸내미가 저녁을 차렸다.



아무리 백수 아줌마여도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요즘엔 저녁밥을 일찍 해야 해서 시간을 이리저리 쪼개다 보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시간 안 된다.

이제 곧 걷기 챌린지 100일이 다가오고 마침 내일은 오랜만에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날이어서 2만 보 걷기 도전을 해보려고 하는데 컨디션이 별로 안 좋다.
몸살감기 조짐이 보인다.

이러면 안 되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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