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유학생 시절,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한국에 있는 몇몇 대학교는
중국 장수성 양저우 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거나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유학생의 교통사고
어느 날, 한국 유학생 한 명이
띠엔동처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가 자동차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띠엔동처란(电动车 전동차)? 오토바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电动车 즉, 전기 배터리로 운행하며 평균 속도 시속 30~50km다. 띠엔동처는 면허가 필요 없어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필 그 유학생은 기초반이어서 위급상황에
대처할 만한 회화 실력이 되지 않았다.
회화 실력이 좋다 해도 교통사고로
쓰러져 있는데 외국에서 어떻게
빨리 대처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그 유학생은 띠엔동처가 자동차와
부딪치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고
띠엔동처 무게에 눌려 다리를 크게
다쳤다.
교통사고가 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채로
"나는 한국인입니다(我是韩国人)"
할 줄 아는 말이 그 한마디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다 보니
섣불리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한국 학생 중 본과 재학생과
연락이 닿아 그 본과 학생이 통역을 해줘서
자동차 운전자와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중국어를 못하는 척하세요!
어느 날,
그 본과 재학생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몇 년째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미 중국 현지에 스며든 게 느껴졌다.
국어책 읽듯이 말하는 기초반 발음이 아니라
리얼 중국인 발음이랄까?
너무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중국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는 수능 1타 강사처럼 말했다.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중국어가
잘 들리고 잘하게 되는 때가 와요.
오히려 지금처럼 못 알아듣고
중국말을 잘 못할 때 중국 사람들이
더 친절할 거예요.
좀 더 회화 수준이 높아지면 친절을
기대할 수 없어요.
그때가 되면 중국어를 못하는 척 연기하게
될 수도 있어요.
중국어 못하는 척하면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줘서 저도 가끔 못하는 척해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그 학생이었을 거다.
"세상에... 나에게 그런 날이 올까요?"

꽃게 속이 텅 비었어요
일취월장까지는 아니어도,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 오면 잊어버리고
또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날들이
계속되었지만,
시나브로 쌓이는 실력은
어느 날 단골 식당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된 날이 있었다.
학교 근처 우동을 잘하는 일식당.
남편과 둘이서 그 일식당에 가면
우동과 돈까스 덮밥을 자주 시키곤 했다.
어느 날 꽃게가 들어간 좀 비싼 해물탕
비슷한 걸 시켰다.
분명 비싼 해물탕을 시켰건만,
종업원이 가져온 해물탕 안에 든 꽃게는
속이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그냥 먹자"고 했지만
딱 한 마리뿐인 손바닥 절반만 한 꽃게가
속이 텅 비어 있는데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 전에도 자주 갔었고 앞으로도
자주 갈 식당인데, 날 호구로 알까 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종업원을 불렀다.
꽃게를 보여줬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你看~~
하면서 배운 단어 총동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지 싶다.
어쨌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종업원은 영특하게도 알아들었고,
주방에 가져가더니 속이
꽉 찬 꽃게를 다시 가져다주었다.
리얼 중국인 외모?
가끔 친절하지 않거나 사람이 많을 때는
적당히 중국어 모르는 척
어눌하게 띄엄띄엄 발음하며
외국인인 걸 티 내는 경지(?)에
다다른 때가 있었다.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중국인도
있었다면 믿으려나?
"진짜 한국인이야?"
"진짜라니까"
이런 식이다.
외모가 허접해서 이미 중국인으로 알고
대화를 시작했으니
"진짜 한국인 맞냐"고
의심을 하는 건 당연하다.
유창하게 중국말을 할 날이 올 거라고
말했던 본과 학생 말이 이해가 되었다.
물론 유창하게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은 중국말 한마디도 안 한 지
n년째 되다 보니 전광석화처럼
잊혔으며 매일매일 잊혀가고 있다.
지금 다시 중국에 가게 된다면 띄엄띄엄
말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걸까?
ㅎㅎㅎ
'은둔형 아줌마의 중국 생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화. 또 가고 싶은 칭다오 랜드마크 5·4 광장의 '5월의 바람' 그리고 장예모 감독의 '야간 조명쇼' (7) | 2022.08.18 |
---|---|
6화. 키워드 '비(雨)'와 관련한 중국 에피소드 (11) | 2022.08.09 |
4화. 보고 싶은 나의 중국어 선생님 (1) | 2022.06.29 |
3화: 중국에서의 주말 아침 루틴 (0) | 2022.06.20 |
2화: 학교에서 살아남기 (0) | 2022.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