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8일)부터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100~300mm 물폭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정확한 지는 모르겠으나 '100년 만의 폭우'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으며 비 피해로 인해 주택과 자동차 침수 그리고 인명 피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뉴스로 비 피해 소식을 접하니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다.
비(雨)와 관련한 작은 에피소드
중국 양저우에 사는 동안 어제오늘처럼 큰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우기에 접어들면 차(車)가 없는 나의 학교 가는 길은 '전쟁터'에 가는 심정만큼이나 비장한 각오를 해야 했다.
2015년 그즈음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의 상황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살던 양저우는 그에 비하면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공중도덕과 위생 개념은 그다지 지켜지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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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가는 아빠가 담배를 피우며 걸어간다든지(경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아무데서나 똥을 싸도 치우지 않고 그냥 간다든지(으악),
가래침을 카~~악!!!! 뱉는다든지(우웩~!!!) 하는 것들...
아빠의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아이가 맡는 심각한 상항인데도 어른들은 그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 있는데도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둘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파트 산책로에서나 길거리에서 강아지가 똥을 싸고 아무렇지 않게 갈 길 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되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똥을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파트나 동네 미화 요원.
가래침도 그렇다.
같은 유형의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남녀 가리지 않고 길을 걷다가 가래침을 뱉었다.
그냥 침이 아니다.
가래침이다.
카~~~~악!!! 뱉는다.
낯선 곳에 하루빨리 적응해야 하는 나로서는 하다못해 길거리 걸어 다닐 때조차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던 중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행복은 매 순간마다 감사하고 만족할 때 축복처럼 찾아오는 거라는 것.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강아지가 아무 데서나 똥을 싸는 행위, 길거리에서 가래침을 뱉는 행위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비 오는 날 아침, 학교 가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비가 오니까 당연히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1층 공동 현관을 나서는데 곳곳에 물이 고여 있는 게 보였다.
위에서 나열했다시피 길거리는 담배꽁초와 강아지 똥 그리고 가래침들로 오염되었는데 비까지 내린다니...
상상해보라...
담배꽁초와 강이지 똥 그리고 가래침이 빗물에 젖어 퉁퉁 불어서 뒤섞여있지 않겠나...
도저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1층 공동 현관 앞에 한참 동안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쩌랴.
학교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까짓... 하루 결석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안 가도 되는데...
'외국 나가면 한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항상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너무도 과한 애국심을 장착하고 있다 보니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었다.
자... 가보자.
우산을 썼어도 안 쓴 것처럼 빗물에 옷이 다 젖었다.
양말을 신지 않고 슬리퍼만 신었다.
고인 빗물 때문에 도로 웅덩이가 안 보여서 조심히 걸어갔다.
그때 발가락으로 뭔가가 느껴졌다.
모래처럼 가는 알갱이...
이것은... 강아지 똥이 빗물에 부서져서 분해된 똥이 분명하다.
아니다.
담배꽁초와 강아지 똥이 뒤섞였나?
제발 더러운 가래침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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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일 뿐.
아무 데나 버린 음식물과 수많은 담배꽁초 그리고 강아지 똥, 가래침 등은 배수가 제대로 안 된 길에 섞여서 만들어진 웅덩이 길을 걸어서 갔다.
중국 도착한 후 처음 비 내린 날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서 울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서 잊지 못하고 있다.
어제오늘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내린 폭우 피해에 비하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약하지만, 비(雨)와 관련한 간단한 에피소드를 적어봤다.
더 이상 큰 비 피해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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