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꽃을 피해 다녔을까 아니면 꽃이 나를 피해서 살짝 피었다가 진 걸까?
잠깐 멀리뛰기 하던 중 우리 동네 벚꽃은 만개했고 돌아와서 보니 이미 스러진 후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말이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봄에 봄꽃을 즐기지 못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트렁크 던져놓고 가장 가까운 계양으로 갔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더 빨리 보려는
내 마음을 알아줘야 할 텐데...'
역시나 처음 가 본 낯선 동네.
정확한 동네 지명은 모르니까 생략~ ^^
분명 하얀 꽃구름 같은 벚꽃 터널도 있었을 텐데 몇 송이 남은 것만으로도 반갑다.
벚꽃이 졌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하얀 조팝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그래도 아직은 노란, 붉은 그리고 흰 꽃들이 봄바람과 함께 살랑거린다.
벚꽃으로 만든 꽃대궐을 봤으면 눈에 덜 들어왔겠지만 나는 못 봤으니 이렇게 희고 고운 얼굴로 종알거리는 조팝나무꽃도 예쁘기만 하다.
라일락이 지천에 피어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이 동네에 이렇게 라일락이 많았나?
며칠 사이에 꽃잎 떨궈낸 나무는 부지런히 연둣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충분히 예쁘니 처음 걷는 이 길을 감사히 걸어본다.
영화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걸어가는 것처럼 꽃잎도 밟고 걸어가는 게 맞다고... 그래서 꽃길을 걷는다... 고 우겨볼 참이다^^
어쩌다 한줄기 바람이라도 만나면 가벼운 꽃잎이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마치 흰 눈송이처럼.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서 감상하다가 아차 싶어 휴대폰 꺼내면, 방금 전까지 날개 단 것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던 꽃잎은 어느새 잠잠해지고 다시 땅에 내려앉는다.
그러길 반복... 아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꽃잎을 즈려밟고 꽃길을 걷는 중이다.
아직 고운 자태를 잃지 않은 벚꽃이라니, 아마 나처럼 뒤늦은 손님을 위해 기다렸나 보다^^
무심코 걷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사과꽃처럼 생긴 하얀 아이.
이름을 정확하게 몰라서 불러주기가 참 어렵다. 제발 사과꽃이어야 할 텐데...^^
(꽃 이름 아시면 알려주세요. 댓글 대환영~ ^^)
벚꽃은 이미 졌지만 여름날 그늘을 만들어줄 산책길을 내려다보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데크길은 길게 늘어진 수양버드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여름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화려했던 봄날을 기억할까?
제주에서 그토록 바라던 파란 하늘을 여기서 볼 줄이야 ㅎㅎㅎ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꽃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아기 새끼손톱만 한 조팝나무 꽃잎도 서서히 지는가 보다. 데크길 위엔 벚꽃잎과 조팝나무 꽃잎이 섞여 꽃길을 만들고 물 위엔 온통 흰 꽃잎으로 뒤덮였다.
한때의 부귀영화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참 허망하다.
인생도 다를 게 있나...
노란, 붉은 그리고 흰 봄꽃이 마음을 흔들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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