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정신없이 오늘도 간 곳 또 가는 일상이다. 요즘따라 새로운 환경을 접했을 때 헤치고 나아갈 판단 능력과 용기가 심하게 결여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면 좀 어떤가.
나는 오늘도 잘 살고 있는데...
물들고 싶다 그대의 색깔로
그대의 색깔이
잘 익은 붉은 사과 빛이라면 좋겠지만
그대의 색깔이
화려한 오색 무지샛빛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나는
그대가 조금 덜 익은 풋가과 빛이어도
그대가 여기저기 빛바래진
조금은 서투른 빛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대의 색깔로 물들고 싶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바위가 이끼에 푸르게 덮이듯 서서히
길고 긴 겨울밤 하늘에
늦은 새벽빛이 물들듯 고요히
나는 그대의 색으로 물들어 가고 싶다.
그대의 색깔로 / 詩 양경모
메티세콰이어의 호위를 받으며 잔잔한 물줄기를 그려내고 있는 징검다리길.
돗자리를 가져왔다면 꼭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물소리, 새소리, 꽃그늘, 살랑살랑 부는 바람...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드림파크 야생화정원은 워낙 넓어 꽃구경에 한눈팔면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나처럼 심각한 길치는 신경 써서 걸어야 한다ㅎㅎ
지난날의 화무십일홍 부귀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초록의 그늘이 대신하고 있다.
드림파크 야생화공원을 명소로 만들어준 가을의 핑크뮬리는 없지만 드림파크 탑은 여전히 건재하다.
장릉에서도, 소무의도 버스 정류장 인근 담벼락에서도 본 빛나는 노란색 꽃은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 다소곳하게 피어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늘도 눈길 한 번으로 더 환하게 피었다.
황매화인줄 알았는데 죽단화라는 꽃이라는 말에 조금은 배신감이 들기도 하다 ^^
그래도 상관없다. 이제야 알았으니 앞으로는 제대로 불러주면 될 일이다.
등나무 길을 따라가다가 만난 으름덩굴 꽃은 사진으로 담기에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덩굴답게 지지대를 따라 머리 위로 높이 있는데다 연약하기까지 하니 살랑살랑 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기까지 한다.
고개 들고 하늘을 향해 카메라 들고 준비자세를 하고 있지만 바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목도 아프고 팔도 아파서 잠깐 심호흡하고 다시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러보지만 절대 눌러지지 않는...ㅠㅠ
뭐라도 잡혀서(?) 찰칵 소리가 나면 좋겠는데 으름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돌아섰다가 다시 되돌아와 찍은.. 그나마 으름꽃 얼굴 제대로 나온 사진이다^^
꽃구경하거나 그늘에서 쉬는 시간이 더 많아 야생화공원에 머문 시간에 비해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은 하얀 꽃만 보면 다 비슷비슷해서 헷갈리는데 여덟 그루의 나무가 한데 어울려 큰 꽃구름을 만들어낸 이 꽃은 그나마 모양새가 조금 달라서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겠다. 이름이 아마 산딸나무라지?
드라마 <도깨비>를 찍은 메타세콰이어 길.
이 길을 걸으면 마치 영화 포스터 한 장은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에도 예쁘지만 새순이 나오기 시작한 지금도 역시나 걷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다가 나무 그늘 뒤로 바람 따라 흔들리는 분홍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꽃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는 물 웅덩이를 지나야 한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고 도움닫기까지 한 후에야 웅덩이를 건널 수 있었다 ^^
예쁜 모습을 봐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피었지만 그 기품만은 잃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음에 다시 안부를 물어볼 생각이다.
다시 되돌아가는 메타세콰이어 길은 초록이 한층 더 깊어 보인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라일락을 본 건 처음이다.
산소캔처럼 은은한 꽃향기를 담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저런 꽃 축제도 많은데 이렇게 멋진 꽃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끝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향기 좋은 꽃길이다.
드림파크 야생화공원 걷기는 나의 아지트까지 온 후에야 끝이 났다.
오늘도 물멍하기 좋은 곳에서 그 누구의,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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