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에 처음으로 원적산 둘레길을 다녀온 후, 제대로 둘레길을 걷지 못했다는 찝찝함 때문에 오늘 다시 다녀왔다.
'100일 걷기' 마치기 전에 한 번 더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오늘이 아니면 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번과 달리 오늘은 '공신력 있는 채널'을 통해 원적산 둘레길 정보를 모은 후 걷기로 했다.
원적산공원 화장실 옆 주차장에 주차한 후 리라이브를 켜고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헤매지 않고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웬걸~!
오늘도 원적산공원에서 한참 헤맸다.
주차장을 건너면 바로 둘레길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넓은 공원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텐트촌, 소공연장, 놀이터 등.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둘레길 가는 길을 모른단다.
길을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길을 알려줘서 헛걸음만 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차한 후 도로를 따라서 조금 더 올라가야 비로소 원적산 둘레길을 갈 수 있는 것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쉬운 길인데 모를 땐 참 난감하다.
원적산공원 북문 표지판을 지나자 곧이어 정자가 나타났다. '공신력 있는 채널'과 같은 길이다.
제대로 찾은 거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잘 걷기만 하면 된다.
원적산 둘레길은 어디에서 걸어도 원적정(팔각정)을 지나 원적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보름 전에 둘레길만 걸으려고 했다가 얼떨결에 원적산 정상으로 향하는 바람에 둘레길 걷기가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는데, 오늘은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오로지 둘레길만 걷기로 했다.
길을 알려주던 원적산 단골 등산객은
"원적산 둘레길이 생각보다 아주 넓다"며 "둘레길 한 바퀴 걷는 건 무리"라고 했다.
둘레길을 막 걷기 시작한 시간이 오후 3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적산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건 어떠냐고 염려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둘레길 걷기를 완성해야만 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첫 진입로만 잘 찾으면 둘레길에서 길 잃어버릴 염려는 전혀 없어보인다.
원적정 표시가 가장 눈에 띄지만 그 길로 가면 정상으로 가는 길이란 걸 알기 때문에 현혹되지 않는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제대로 들었다면 처음부터 헤매지 않았을 텐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보니 손발이 고생한다.
둘레길은 걷기만 하는 길이 아니었다. 좁은 산길에서 달리는 사람, 맨발로 걷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등 각자의 방식으로 원적산을 가까이 했다.
쉬지 않고 걸으면서 찍은 사진이라 영 성의가 없어 보이지만 잘 걷고 있는 중이다.
지난 1월 어느 날, 나태주 시인의 <새해>를 올린 적 있다.
<새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공짜로 받은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님과 달님 중 벌써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물론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지만 쏜살처럼 달려간 지난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둘레길을 제대로 걸으니 살짝 단조로움이 느껴져 이런 헛생각을 하며 걷기도 했다.
봄꽃이 모두 진 후의 산 속 초록 세계가 다 그럴 텐데 긴장감 풀려서 그랬나 보다.
친절한 안내에 따라 아주 잘 걷고 있다.
둘레길에서 만난 금계국.
마땅히 쉴만한 곳을 못 찾아 계속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찍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사진이다.
이 흙길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맨발 걷기를 못하고 있어서 그들의 실천력이 부러웠다.
나무다리에서 잠깐 기댄 채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걸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잘 걷는 게 둘레길에 대한 보답이다.
두 갈래길을 만났다.
지난 경험에 의하면 밑으로 내려가면 원적산 둘레길에서 벗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왼쪽길로 걸었다.
누가 봐도 왼쪽길이 둘레길처럼 보이지만, 막상 두 갈래길 앞에 서면 나무 계단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
드디어 석남약수터 갈림길에 도착했다.
보름 전 원적산 둘레길 걸을 때 처음 진입한 곳이 바로 석남약수터였기 때문에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숲 속 그늘을 걷는다지만 그래도 6월의 숲 속은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땀과 반갑지 않은 모기 출현으로 만만치 않다.
얼굴은 열기가 오르고 땀이 흐르는데 모기가 앉았다. 선크림 때문에 끈적여서 못 떠나는 건지 아니면 최대한 피를 뽑아내려는 수작인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손부채로 저어도 도망가지 않아 얼굴을 비볐다.
무거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얼떨결에 내 손가락에 그만 터지고 말았다.
다리는 계속 걷고 있지만 찝찝해서 휴대폰을 거울삼아 얼굴을 보니,
세상에 ~
얼마나 피를 빨았는지 볼 위에 붉은 흔적이 낭자하다.
시야가 트인 곳에선 그나마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물도 마시고 땀도 식힐 겸 쉬어가기로 했다.
땀을 바짝 말려서 더 이상 모기밥이 되지 말자!!!
둘레길이라고 해서 마냥 걷기 편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이렇게 나무뿌리가 드러나거나 돌이 많은 길도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걸려서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진 찍고 짧은 영상도 찍었다.
그러고 보니 좁은 산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앞만 보고 걷는 것밖에는...
드디어 철탑 도착~!
지난번엔 이곳에서 사람들 따라서 계단을 올라 원적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둘레길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날의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은 제대로 걸어보자!
나무 계단은 원적정과 원적산 정상으로 가는 길, 반대편 화살표는 '마가의 다락방'을 가리키고 있다.
이때 두 개의 길 외엔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상으로 가는 길이 아닌 마가의 다락방 쪽으로 걸었다. (왜 그랬을까?)
세 개의 갈림길.
지난번과 똑같은 길 앞에 서있다.
'공신력 있는 채널'을 살펴봐도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더 이상 다른 길은 안 보였다.
다른 길에선 오가는 등산객도 많던데 하필 이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엔 왼쪽 길로 걸어서 실패했으니 오늘은 오른쪽 길로 걷기로 했다.
오른쪽 길로 걷지 않고 누군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물어봤더라면 덜 고생하고 쉬웠을 텐데...
자신이 없으니 금세 쫄았는지 들고 있던 휴대폰도 떨어뜨리고, 휴대폰 잡으려다가 미끄러져 손바닥이 까져서... 잠시 바닥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찝찝함을 어찌해야 할까?
그래도 일단 걸었다.
이런 안내판이 나오면 안 되는데???
지금껏 봐 온 안내판이 아니다.
신뢰가 확 떨어진다.
오늘도 둘레길 걷기 미완성인 채로 끝나는 건가?
평소 같으면 상관없지만 오늘은 무조건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이런 거 싫어함 ㅎㅎ)
약수터에서 한참 더 내려간 뒤에야, 등산객을 만나 제대로 된 둘레길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약수터를 지나고 나무 안내판을 지나 철탑까지 걸었다.
걸어온 길도 아니고, 정상으로 걸어가는 나무 계단도 아닌, 철탑 아래에 좁은 길이 있단다.
눈여겨본 적 없는 철탑 아래로 들어가니 정말 좁은 길이 있었다.
아~~ 그랬구나.
'공신력 있는 채널'을 다시 읽어보니, 정말로 '철탑 아래 좌측'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철탑 아래 길이 안 보였는데 어쩌란 말인가.
표지판을 한꺼번에 올렸지만 실은 둘레길을 계속 걸어야 만나는 표지판이다.
원점에 다다를수록 체력도 한계에 다다르고 계속 똑같은 둘레길이어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다.
원적산공원(석천약수터) 표지판이 두 개인데 하나는 0.39km, 또 다른 하나는 0.37km라고 표기되어 있다.
엄연히 다른 장소라는 뜻이다^^
드디어 3시간 만에 처음 걷기 시작한 원적산 공원(벚나무동산)에 도착했다.
오후 늦은 시간에 둘레길 걷기가 무리라고 말한 등산객의 조언이 이해가 되었지만 평지에선 달리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3시간이 걸린 건 처음에 시작점을 빨리 못 찾아서 헤매고, 철탑에서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그때도 시간 낭비가 많았던 탓이다.
이렇게 원적산 둘레길 걷기를 완성했다.
다음에 또 원적산을 걷게 된다면 둘레길을 한 바퀴 걷고 정상까지 걷는 코스를 선택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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