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생활은 복잡한 듯 단순하게도 '뭔가를 배우는 것'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회 보기' 외에 '걷기'로 이루어져 있다.(가정 주부로서의 일은 여기에 끼워주지 않음^^)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스케줄이 아니라 이사 온 이후 낯선 동네에서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간 것이다.
지금은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로 놀거리가 많아져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만보 걷기에서 맨발 걷기로 주파수가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변함없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잘 돌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하고 싶다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변덕쟁이의 삶은 여전하다.
물론 한달 계획, 100일 계획, 6개월 계획 그리고 1년 계획 등 장단기 계획이 있지만 팔랑귀 때문에 언제 어떻게 변경될지는 나조차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매번 성실하게 대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즐기면서 하다보면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떻든 감사하게 받아들일 자세도 되어 있다.
꺄오~ 드디어 자유의 날 화요일이다~^^
개점휴업 상태인 '맨발 걷기'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어제 너무 더워서 원래 오늘 계획은 '땡볕과 맞짱 뜨기'였는데 웬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비 오는 날 맨발 걷기가 좋다는데 마침 자유의 날인 데다 비까지 내리니 맨발 걷기에 최고의 날이 아닐 수 없다^^
바다타임에서 물때를 확인한 후 그나마 익숙한 하나개 해수욕장에 가보기로 했다.
아, 애증의 하나개 ㅠ
마침 오후 시간이 간조라니 ㅎㅎ
집에서부터 설레고, 가는 동안 무척 기대되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맨발 걷기하러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보자규~ 쓔슝~^^
비가 와서 관광객도 없지만 하나개 해수욕장 시설 이용료가 적힌 배너도 누워있다. 아마도 바람 때문에 일부러 눕혀놓은 듯싶다.
등산화를 신고 출발했으나 신발을 갈아 신거나 발 씻을 상황이 생길까 봐 슬리퍼 챙겼는데 잘한 듯~^^
해수욕장에선 슬리퍼마저 배낭 옆구리에 꽂아서 손으로 들어야 할 짐을 줄였다.
도시에서 맨발로 걷거나 비 맞고 다니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해변에서의 맨발 걷기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나개 해수욕장 입구에서부터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는데 벌써 두어 시간쯤 걸었단다.
마침 물 빠진 해변가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하나개 해수욕장의 자랑인 '천국의 계단' 촬영 장소를 소개할 법도 하건만 오늘은 그냥 지나쳤다. 그만큼 관심사에서 멀어졌다는 반증이다.
이런 길쯤은 뭐, 그냥 맨발로 걷는다^^
맨발로 해상탐방로 데크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데크길 아래로 갯벌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틀림없이 어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데크길 끝까지 가는 동안 비가 잠잠해지면 산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어랏! 비가 옆에서 쏟아진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우산이 날아갈 것 같다.
이러면 산으로 올라가는 건 취소다!!! ^^
잘했어~
아~주 자연스러웠어^^
해상탐방로 끝나는 지점에 무사히 도착~
마치 누군가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빗물인지 누구의 눈물인지 모르게 갯벌은 적절히 물이 차있다.
자, 이제부터 나만의 방법으로 비 오는 날을 즐겨볼까?
발에 닿는 촉감은 적당히 딱딱하고 적당히 부드럽다.
그동안 산에서 또는 집 앞 산책길에서 걷던 길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을 다칠까 봐 엉거주춤 걷지 않아도 된다.
물장구치다가, 갈매기 놀려주다가, 갯벌 걷다가, 사진 찍다가...
혼자놀기의 달인이 되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봤다면 미친 거 아닌가 했을 것이다.
맞다!
비 오는 날 갯벌 걷기가 이렇게 미치도록 좋았다니^^
갯벌 걷기를 만끽하는 도중에도 나름 바닷물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나 먼바다에서부터 바닷물이 천천히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그 속도가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
산에 올라가지 않기로 결정했으므로 갯벌을 걸어서 그대로 하나개 해수욕장 입구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데크길 기둥을 몇 개 지나쳐 걷다가 바닷물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해수욕장 도착 전에 물이 찰 것 같아 보였다.
뒤돌아서서 빠르게 뛰었다.
머리부터 빗물에 다 젖었기 때문에 우산 쓰고 걷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커다란 짐승에게 쫓기듯 달려서 다시 데크길 끝에 도착했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 데크길 끝에 서있는데 마침 산에서 등산객 몇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비 오는 날의 산행이 얼마나 상쾌한지 해 본 사람만 안단다.
산 속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세상 그 어떤 카페 커피보다 더 맛있단다.
비오는 날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란다.
우비를 입었지만 안 입은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온 날의 산행이 얼마나 좋은지 전파하려고 애썼다.
진심이리라.
그들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와~
이렇게
대놓고 유혹하면
다음에 꼭
하게 될 텐데...^^
데크길 걷는 동안 벌써 바닷물이 들어왔다.
1km 정도 되는 갯벌을 걸었다가는 중간에 밀물을 만났을 텐데 그나마 되돌아서 데크길로 뛰어간 건 잘한 일이다.
해수욕장 입구 수돗가에서 바지를 입은 채로 빨았다 ㅎㅎ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갯벌에서 뛰었을 때 손으로 털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모래가 너무 많이 튀었기 때문이다ㅎㅎ
발도 씻고 손수건으로 닦은 후 버스에서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양말은 극강의 행복이었다^^
지난 겨울 관모산에서 처음 알게된 맨발걷기.
어싱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비 오는 날의 갯벌 걷기'다.
비오는 날 함께 맨발로 걷는 즐거움을 나눌 동지 한 명만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ps.
'맨발 걷기' 시작을 했지만 흐지부지 끝날까 봐 카테고리 없이 지내다가 세 번째 되는 날(오늘) 드디어 새로운 문패를 달았다. 앞으로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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