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활옷만개>展을 관람한 후 점심을 먹기로 했다.(12.10)
우리는 특별히 맛집을 쫓아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줄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아무 식당이나'를 선택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국립고궁박물관 건너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골목을 어슬렁 거리며 걷다가 한복대여점 유리창에 붙어있는 전시회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박노해 사진展 <올리브 나무 아래>
우리가 아는 그 박노해?
박노해가 누구인가.
8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운동가 아니던가.
그가 20대 때 쓴 <노동의 새벽>은 불온 서적 취급 받았고, 어떤 경로로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초판을 갖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박해 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담은 필명 박노해는 당시 노동자들의 영웅이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이었다.
그런 그가 전시회를, 그것도 사진 전시회를 한단다.
지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이다.
오후 다른 일정이 있었지만 노선을 변경하여 박노해 사진展을 보기로 했다.
박노해 사진展 보러 가보자, 쓔슝~^^
RA CAFE GALLERY
2023년 10월 4일~ 2024년 8월 25일
무료관람
1층은 카페, 2층이 갤러리인데 카페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조심스레 2층으로 올라가보자.
'라 카페 갤러리'는 2012년부터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줌이 되지 않는 낡은 필름 카메라로 담아온 사진을 전통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한 사진들을 전시한다.
박노해는 "내가 사진 속 사람들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내 가슴에 진실을 쏜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갤러리 입구엔 전시회 주제에 맞게 작은 올리브 나무가 환영을 대신했다.
많은 나무 중에서 왜 하필 올리브 나무일까?
2005년 박노해 시인은 레바논 내 세계 최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에 찾았다가 '학교 다니는 게 꿈'인 아이들을 위해 다음 해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세웠다.
17년째 시민단체 나눔문화 회원들의 후원으로 10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자이투나는 '올리브'라는 뜻으로, 박노해 시인이 평화와 희망의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학교가 열리던 날, 올리브 나무를 심으며 박노해 시인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했다.
"이 나무는 한국의 선한 이들이 선물한 나무란다. 우리 학교 이름이 '자이투나'인 것은 너희가 강인한 올리브나무처럼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댜. 이 올리브 나무는 너의와 함께 커나갈 것이고 항상 너희를 지켜줄 거란다."
석양의 기도 / 박노해
알 자지라 신화에서 창세로 전해진 '노아의 방주' 이야기.
노아는 비둘기가 올리브 새잎을 몰고 오는 것을 보고 홍수의 시대는 끝났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임을 알았다.
이로부터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전란의 땅에 노을이 물들고 오늘도 긴 아잔 소리가 울릴 때 하루 일을 마친 농부는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기도를 마친다.
파괴된 대지에 가장 먼저 피어났던 저 올리브 새싹처럼, 사무치는 마음으로 삶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사진 작가가 글을 잘 쓰면 사진이 못다한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기도 하고, 시인이 사진을 잘 찍으면 글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사진으로 확장하여 보여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박노해 시인의 글은 과격한 표현 없이도 단단하고 고귀해서 사진 옆에 적힌 에세이를 읽는 동안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올리브 나무 아래> 책 표지를 확대한 가벽과 작은 벤치가 놓여있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도 찰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박노해 시인의 책 중 <올리브 나무 아래>를 비롯한 <아이들은 놀라워라>, <길>그리고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포함해 총 4권을 빌렸다.
박노해 사진 에세이답게 전시회에서 본 사진과 글이 책 안에 모두 담겨있다.
아껴서 읽는 중이다.
2020년에 발행한 <길>에 적힌 글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 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