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 / 詩·김성수
세상에 막힌 집은 없다
소통할 수 있는 좁은 문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낮은 담 너머로 서로 생활을 간섭해주는
이웃의 수다가 싱거운 일상에 간을 하고
때론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더라도
뒷날 평상에서 함께 마늘을 까며
간지러운 웃음으로 털어내는,
오래된 골목의 풍경은 조각조각 덧댄
상처를 땜질하는 소리로 저문다
(이하 생략)
매주 두 차례 요가 배우러 다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길을 잘 몰라서, 오르막이라서, 더워서, 비와서 등등)처음 2주 정도는 차를 타고 다녔다.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몇 개의 신호등을 건너면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다 비가 오지 않는 어느 날, 운동 겸 동네 구경 겸해서 일부러 걸어갔다.
차를 타고 다니던 큰 도로와는 달리 지름길인 골목으로 가려다 보니 오히려 골목 안에서 헤매게 되었다. 처음부터 욕심부려지름길을 택한 게 잘못이다.
길 안내 어플을 보면서도 '이 길이 맞나?'하면서 오르막 길을 올라갔다가 막힌 길이어서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했었다. 그때는 골목 풍경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각하지 않고 요가 수업시간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고 걸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생각했던 '운동 겸 동네 구경 겸'은 이미 물 건너갔다. 짧은 시간인데도 옷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더워서 헉헉 대며 걸어가느라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걸으니 왜 그렇게 오르막 길인지...
두어 번 걸어서 다닐때 즈음 같은 동네에 사는 회원과 얼굴을 익힌 후 요가가 끝나면 함께 걸어서 집에 오는 일이 잦아졌다.
병원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그 회원은 근무 스케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요가 수업을 결석하는 날도 있다. 20분 정도 함께 걸으며 들려주는 동네 팁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겐 고급 정보이자 깨알 즐거움이었다.
그녀 덕분에 집에서부터 최단거리로 요가 센터까지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골목을 헤매지 않게 되었다.
'더운데 차 타고 갈까?'하는 마음을 버리고 눈썹을 휘날리며 경보 수준으로 다니고 있다.
혹여, 몸에 착 달라붙는 요가복을 입고 걸어간다고? 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그런 요가복을 입을 자신이 없어서 헐렁한 운동복 입고 다니니 걱정은 NO!
골목길에 예쁜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제는 요가 마치고 혼자 지름길로 내려오는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꽃들이 보였다.
김춘수 님의 詩 <꽃>처럼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골목 안 가게마다 크고 작은 화분들엔 내가 모르는 화초와 꽃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골목은 환하게 빛났다.
작은 동네 미용실 앞 가로수는 나팔꽃이 기대어 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누군가 가느다란 철사로 나팔꽃 덩굴을 묶어주었다. 예쁜 꽃으로 보답하며 나무 끝까지 오를 기세다.
네일숍 가게 앞엔 붉고 긴 손톱을 닮은 루셀리아가 활짝 피었다. 어쩜 가게와 딱 어울리는 꽃이다. 네일숍 주인이 일부러 루셀리아를 심었나 보다.
요리 똥손에 이어 식물 기르는 것도 똥손인 내가 봤을 때 꽃을 키우는 골목 안 가게 주인들은 모두 금손이 아닌가 싶다. 이파리는 싱그럽고 각양각색 꽃들은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웃게 해 준다. 피자 가게 앞엔 피자 종류보다 더 많은 화초들이 입구에 놓여 있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꽃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식당 앞에는 찬란한 햇빛을 머금고 하늘 향해 곧게 뻗은 붉은 칸나가 손님을 맞는다.
요즘 도시에선 봉숭아 보기가 쉽지 않은데 가게 앞에 놓인 스티로폼 상자에서 큰 키를 자랑하는 봉숭아. 올망졸망 꽃이 많이 피었다. 주인의 정성을 먹고 자랐나보다.
비록 먼지 뒤집어썼어도 꽃 그 자체로 나무랄 데 없다. 사진을 잘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꽃 피우느라 수고한 것에 비하면 사진 찍는 기술이 너무 허접하다.
가게마다 주인이 좋아하는 식물은 다 다른가보다. 분식집 앞에 놓인 화분. 도통 이름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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