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새로운 도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문쌤 2022. 6. 13. 22:24

엉터리 같은 기억력을 되짚어보자면, 오래전에 읽은 글인데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요즘 나도 나를 못 믿는다.

내용인즉슨,  어르신들이 느지막이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 그림 전시회를 하거나 발표회를 하는 내용이었다.

70대 어르신이 그 연세에 그림을 배워 90대에 전시회를 했다는 이야기,

70대에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젊은이들(70대보다는 젊은)에게 훌륭한 메시지를 주었다.

그야말로 평생 교육이다.

 

친정아버지는 서예를 꾸준히 배우고 계신다. 안타깝게도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 번도 전시회에 간 적 없다.

서예 대전 사진을 찍어서 딸에게 자랑하시는 아버지에게 '최고'를 뜻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축하 인사를 전했을 뿐...

몇 년 전부터는 우크렐레를 배우셔서 발표회도 하셨다. 복지관 직원이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을 봤다.

악보 보는 방법부터 배우셨을 텐데...

얼마나 오랜 시간 연습을 하셨길래 발표회 수준까지 도달하셨을까? 대단하시다.

최근엔 인문학 수업을 들으셨단다.

수업 때마다 교수님이 강의를 마친 후 주제를 정해주시면 그에 따른 글쓰기 숙제를 써서 제출하셨단다.

첫 수업엔 10명이 수강하셨는데 수업 날짜가 지날수록 결석하는 사람이 늘어나 마지막엔 단 3명만이 책 발간까지 하게 되었단다. 곰이 사람이 되는 시간보다 더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아버지는 복지관에서 발행하는 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 교육을 실천하고 계셨다.

 

친정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요가와 수영을 꾸준히 배우시더니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다리 일자 찢기를 우리들에게 선보이기도 하신다. 장구도 수준급으로 곧잘 하신다. 최소 10년 이상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배운 결과다.  요즘엔 게이트볼에 푹 빠지셨다. 동 대회에도 선수로 출전하신다니 보통 실력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그렇게 어머니는 평생 교육을 실천하고 계셨다. 

또한 두 분 모두 서로 스케줄이 달라 부딪힐 시간이 없다 보니 싸울 일이 줄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다보니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에 대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삶에 흥미를 잃어버린 요즘, 가족들의 강압에 못 이겨 동네 문화센터에 기웃거리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활기차게 움직이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요즘이다.

 

 

새로 개강한다는 플래카드가 도로 가에 붙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래, 결심했어. 일단 시작해보는 거야'

 

 

외국어 1과목, 운동 1과목, 그림 1과목을 하고 싶었다.

외국어는 영어나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

일단 점점 잊혀져가는 중국어 한 글자라도 덜 놓치고 싶어 중국어 반에 이름을 올려놓기로 했다.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내게 운동이라 함은 그저 평소보다 몸을 좀 더 움직이는 정도여도 좋을 듯싶었다.

그림은 전혀 새로운 영역.

아직 붓을 잡을 용기가 없기에 캘리그라피로 걸음마를 시작하기로 했다. 캘리그라피를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예쁜 글씨를 쓰는 시간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연필을 잡게 될지 수채화 물감 혹은 유화 물감과 함께할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오늘부터 등록하는 날.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도 오는데 그냥 내일 갈까?'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는 날이 부지기수라 나는 나를 잘 믿지 않게 되었다.

 

하루 늦게 가서 인원 접수 마감되면 불타오르는 교육열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 빗속을 뚫고 갔다.

 

 

'잘했어'

나를 칭찬해~

문화센터에 도착하니 한 분이 수강 신청서를 작성하고 계셨다.

나보다 더 연세가 드신 분인데 마감될까 봐 첫날 수강 신청하러 오셨단다.

그분의 수강 과목은 요가 필라테스.

나는 오래전에 요가를 배운 적 있어서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었다. 

처음 수강하시느냐고 여쭤봤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셨나?

 "봄부터 배웠는데 예전에 알던 요가가 아니에요, 여러 가지 기구를 사용하면서 하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하게 돼요. 오늘 수강 신청 첫날인데 이 과목은 인기가 많아서 첫날 마감된대요. 비가 와서 내일 올까 하다가 마감될까 봐 우산 쓰고 왔어요"

 

 

앗싸~ 고급 정보 습득!

그리고 팔랑귀가 합세해 즉석에서 요가를 겸한 필라테스 수강 신청서를 작성했다.

중국어 중급, 캘리그라피, 요가.

순식간에 일주일이 꽉 찬 스케줄이 완성되었다.

신청서 작성하자마자 곧바로 수강료를 이체했다. 혹시 순서에서 밀릴까 봐...

 

딸내미는 어제 도로 가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수강료 내줄 테니까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수강 신청해"

 

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 살짝 고민되는걸?

'효도하겠다는데 수강료를 받어?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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