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갈 때마다 세 권씩 대출하던 습관을 버리기로 한 건 잘한 일이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거나 반납 날짜를 넘겨서 혹시 모를 내가 반납하길 기다리는 시민을 기만한 행위로 비칠까 봐 한 권씩만 빌리기로 했다.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도서관 나들이지만 그래도 좋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으로 쓔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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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유혜선 作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을 운명처럼 집어 들었다.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아래 '삶이 막막할 때 그림을 보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삶이 막막할 때' 그림을 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늘 반복적으로 나의 허접한 수준을 드러내지만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그림을 보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는 항상 드는 의구심이다.
도서 하단에는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적으로 상상하라'라고 적힌 글이 대못처럼 박히며 '도대체 어떻게 사고하는 게 인문학적이며 어떻게 상상해야 예술적으로 상상하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클림트,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등 몇몇 유명 화가 외에는 그림도, 화가 이름조차 낯설다.
그중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1888년, 캔버스에 유채, 160x167.5cm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림 한 점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 읽는 것 같았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닮은 남자가 등장한다. 갑자기 집에 온 남자는 나라라도 구하고 온 것처럼 비장하다. 그러나 옷차림은 남루하고 초라하다. 남자를 맞는 사람들의 표정은 반갑지 않다.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림 속 남자의 눈빛과 정지된 동작으로 순간의 긴장을 읽어낼 수 있다.
온 가족이 얼어붙듯 놀랐고 가정부 둘은 주인을 몰라본다. 골고다 계속에 있는 예수의 그림이 벽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러시아 민족 지도자의 사진이 걸려있다.
당시 러시아 민중의 종교와 사상이 드러난다.
행색이 초라한 가장은 혁명에 가담하느라 오랜 시간 집을 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오랜 부재로 생사를 모르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돌아왔다. 그러나 가족들은 가장이 반갑지 않은 눈치다. 부인은 피아노를 치다 말고 크게 놀랐다. 딸은 아버지를 모르는 것 같고, 아들은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검정색 면사포를 쓴 남자의 어머니는 죽은 줄만 알고 있던 아들이 나타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가족들은 그의 출연을 반기기보다 놀라서 할 말을 잃은 것 같다. 남자에게도 집은 낯선 공간이다. 너무 오래 집을 비운 탓이다. 다시 집을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집에 그가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p137~138
시대적 상황과 화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그림이지만, 마치 그림 속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자세히 묘사한 글을 읽으며 '인문학적으로 사고하고 예술적으로 상상하라'는 책 표지에 적힌 문구를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이제 예술적으로 상상하며 그림보기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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