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 같지만 마치 엊그제 있었던, 어쩌면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다.
세월은 흐르는데 기억은 그때에서 멈춰진 것처럼...
5월의 장마처럼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처럼 내리는 빗속을 걷다가 따스한 엄마의 품속 같은 전시회를 보고 홀린 듯 '갤러리 은'으로 들어갔다.
갤러리 은 개관 초대전
문선영 <엮, 꺼내다>
2024.05.10~5.31
전시회 배너의 그림은 영락없는 친정어머니 장롱에 있는 베갯모와 닮았다.
언젠가 비슷한 전시회를 다녀온 후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로 "베갯모 절대 버리지 말고 나중에 나에게 주세요"했던 기억이 났다.
들어서자마자 안내데스크 위에 펼쳐진 미술 잡지 속 문 작가의 <엮, 꺼내다>展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문선영 작가는 한국민화진흥협회 평생교육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제1회 월간민화 어워드 오늘의 작가상, 제15회 김삿갓 문화제 전국 민화 공모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워낙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 전시회가 민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을 눈치로 알게 되었다.
천에 자수를 놓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한지에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신기해서 가까이에서 보고 몇 걸음 물러나서도 봤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정말 한 땀 한 땀 수놓은 것 같다.
처음엔 커다란 꽃송이만 눈에 들어오더니 찬찬히 보고 있으면 금박의 장수풍뎅이도 보이고 웃고 있는 나비와 귀여운 소녀도 보인다.
따로 작품 설명 없이 한 장의 종이에 적혀있는 걸 읽어보면 한지에 혼합재료로 그린 230*435cm의 '모란바다'일 거라 생각한다.
6개의 화폭을 따로 떼어놓고 각각 한 편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훌륭하다.
'갤러리 은'의 전시회는 2층으로 이어진다.
외할머니나 친정어머니의 장롱에서 보던 모습이 다시 그림으로 태어난 듯하다.
특히 모란꽃이나 색동은 영락없는 기억 속 베갯모 그대로다.
2층에는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른바 <엮, 꺼내다>의 주제가 '치유'인 만큼 부정적인 생각들을 긍정의 실로 엮어 치유에 이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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