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아줌마의 100일 걷기 챌린지

[100일 걷기 챌린지]54일차. 애증의 강화/어서오시겨~ 석모도 수목원

문쌤 2022. 11. 8. 23:59

 

대중교통으로 강화도까지 가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석모도 가는 건 고민을 많이 해야 해서 '가보고 싶은 곳 100' 목록에만 적어놓고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걷기 챌린지 중인데 매번 차를 타고 다니면 편안함에 안주할까봐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도 이젠 걷기 운동에 성실해야 하지 않겠나.

 

석모도 수목원까지만 데려다주고 집에 갈 때는 혼자 알아서 하라는 조건 하에 석모도 수목원에 갔다.

강화터미널에서도 승용차로 30분 정도 가야하는 곳이라 차가 없으면 석모도는 불편한 곳이다. 

 

 

"어서 오시겨~"

 

석모도 수목원 주차장에서 수목원 쪽으로 몇 걸음 올라가면 "어서 오시겨~"하며 관광객을 맞이한다.

조화인가 싶어서 만져보니 초록초록한 바탕과 빨간 글씨 모두 생화로 새겨져 있어서 신기했다.

 

석모도 수목원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몇 발자국만 걸어도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다.

 

돌탑 공원 같은 곳이다. 돌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사진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돌탑 사이 빈 공간에 작은 돌멩이 하나 끼워 넣었다.

 

소원을 여러 개 말하면 안 들어줄 것 같아서 심플하게 한 가지만 빌었다.^^

 

 

가을이 저무는 시기에 수목원에 간 것은 아쉬움을 더했다. 특히 향기를 내뿜는 예쁜 꽃들과 싱그러운 초록잎으로 장관을 이뤘을 장미 터널을 보니 더더욱 아쉬움이 컸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이라니... 아쉬워~

 

 

석모도 수목원에서도 사랑의 하트는 인기 있는 포토스팟. 

핑크색 하트가 워낙 강렬해서 옷이 웬만큼 화려하지 않으면 하트에 묻힐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의외로 나이 드신 분들도 좋아했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의 다정한 포즈는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요즘 어딜가나 데크가 깔려 있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 나뭇잎이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 뿐인데도 산 공기며 낙엽 냄새가 걷는 즐거움을 주는 주요 요소인 것 같다. 이 공기 이 느낌을 담아서 집에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석모도 수목원은 관광객들에게 '산'과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곳곳에 표지판을 새겨놓았다.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세계 최고령 나무는? 또는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는? 혹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는? 이런 식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질문 아래에 친절하게 정답이 적혀있어 쉬는 동안 한 번씩 읽어보았다.

 

 

석모도에는 야생 조류가 많아 예쁘게 만든 새집이 여러 곳에 있었다. 곤줄박이, 노랑딱새, 직박구리, 박새 등 대부분 참새목이다. 

한 마리 당 한 채씩인가요?

 

 

'조류테마로드 종점' 팻말을 보고 돌아가야 되나 싶었는데 육묘장 옆에 편백나무 숲이 있었다. 수령이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편백나무 사잇길을 크게 심호흡하며 걸으니 힐링 그 자체였다.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은 수목원에서 아직까지도 밝게 피어있는 국화. 다소 생뚱맞아보이지만 걸어서 내려가는 동안 국화향기에 또 한 번 취하며 걸으니 이 느낌도 좋았다.

 

 

석모도 수목원 안에 있는 온실.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쳐서 나도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들어가봤다. 온실이라기엔 규모가 너무 아담했다.

 

 

공간이 넓지 않으니 식재할 수 있는 꽃과 나무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특별한 온실을 기대했건만... 온실이다보니 바깥 기온과는 확실히 다르게 따뜻했다. ^^

 

 

떨어진 꽃잎을 치우지 않아 오히려 붉은 꽃무덤이 운치있다. 시인이 이 모습을 봤다면, 온실 속 떨어진 동백 꽃잎을 보며 아름다운 시 한 편은 썼을 것 같은데 감성 0%인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너 평 되는 공간에는 다양한 선인장이 자리하고 있다. 가시가 많아 만져볼 수는 없지만 따뜻한 온실 안에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온실 맞은 편에 있는 건물.

외형만 보자면 외계인과 교신이라도 할 것 같지만 예쁜 이 건물은 화장실 되시겠다. ^^

 

 

온실에서 나와 몇 걸음 걷다보면 00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많은데 초화원도 그중 하나다. 잠깐 동안 핑크빛을 발산하며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았을 핑크뮬리 밭이다. 자기 역할을 다 한 핑크뮬리의 빛바랜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늦가을이다 보니 화려한 꽃들은 모두 시들고 수목원 생태체험관도 수목원 직원들이 정리하고 있었다. 여름이어도 좋고 가을이어도 아름다웠을 수목원. 11월의 수목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개저씨!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되나요?

 

석모도 수목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문제는 어떻게 집에 가느냐인데... 

 

수목원 주차장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30분.

마을 구경도 할 겸 30분 정도 걷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 10편 운행하는  31B번 버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검색해보니 55분 후에 도착한단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기 심심해서 다음 혹은 다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계속 시간 체크를 하며 걷다 보니 방개마을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금방 버스가 올 예정이라 앉아서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목줄 없는 개님이 엄청난 포스를 자랑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 개님이 짖으면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집 앞마당에 묶여있는 개들도 한꺼번에 짖어댔다. 무서워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개님이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눈을 마주칠까봐 챙모자를 눌러쓰고 개님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 나를 '가마니'로 알았는지 더 크게 컹!컹! 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개님이 점점 자신감이 차오를 때마다 옆집에 묶여있는 개들도 온 마을이 울리도록 짖어댔다.

 

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 

 

그때 구세주처럼 906-1번 마을 버스가 다가왔다. 원래 내가 타려던 버스가 아니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에게 다가가 무작정 세웠다.

 

기사님은 어디 가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데나 가서 내릴테니 일단 태워주세요" 했다.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외포리에서 원래 타려던 버스를 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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