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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이어트 시작했어요"

닭가슴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식량. 쿠팡에서 처음으로 닭가슴살을 샀다. 내 것이 아니다. 아들이 일용할 양식이다. 하얀 거짓말이었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뿐 아니라 길 가다 만난 어른들로부터도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포동포동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아무래도 말라깽이보다는 토실토실 아기돼지를 더 좋아하지 않나. 나의 걱정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였나 보다. "아들이 살이 쪄서 걱정이에요" "걱정 마, 어릴때 찐 살은 전부 키로 가거든" 물론 또래보다 키는 컸지만 '통통'은 여전했다. 중학교 때도 똑같은 고민을 얘기하면, "걱정마, 고등학교 가면 공부하느라 살이 저절로 빠져"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통'을 넘어 '뚱뚱'의 길로 접어들다 보니 나의 걱정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주..

3화: 중국에서의 주말 아침 루틴

1화에서 밝힌 일명 '콩나물 사건' 이후 집에서 가까운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마트를 이용하다가, 주말이면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생필품과 식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쟁였다. 냉장고는 작은데 한국에서 장 보던 버릇을 못 고쳐 일주일치 식량을 사다 보니 냉장고는 언제나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재래시장 위치를 알게 되었다. 도로 가에 주차하는 비용 5위안 따위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먼저, 시장 입구에서 파는 참깨 빵(정확한 이름은 모름)을 너무 좋아했다. 아무런 첨가물 없이 오로지 밀가루와 약간의 소금으로만 간을 한 빵이다. 빵의 겉면에는 참깨 범벅이다. 참깨가 풍년인데 처치 곤란해서 많이 뿌렸거나, 아니면 어느 날 참깨를 쏟았는데 너무 잘 팔려서 그 뒤로 참깨 범벅을 했..

2화: 학교에서 살아남기

앞서 밝혔듯,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중국행에 몸과 마음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살아야' 했고 '배워야'했다. 학교 내에선 특히 점심 시간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메뉴를 읽고 말할줄 알아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밥, 밥, 밥 학생 식당에서 같은 반 유학생들을 만나면 도움을 받기도 했다. 특히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 학생들의 메뉴를 따라서 주문하곤 했는데, 일주일 내내 그 메뉴만 먹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물론 맛있었지^^ 그러다가 외국인 학생들이 먹는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따라서 시키거나, 내 앞에서 주문하는 중국 학생의 낯선 음식을 보며 같은걸 달라고 하기도 했다. 뭐라고 말했냐고 묻는다면? 우리에겐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가 있고, 더불어 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천하..

도를 아십니까 종교

인도 폭이 좁은 길을 걷고 있었다. 상점마다 물건들을 인도까지 침범해서 쌓아놓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더 좁았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자칫 어깨가 스칠 정도였다. 나는 도로 쪽으로 걷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들고 조심히 걷는 중이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쳤다. 0.5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 마른 체형에 키가 조금 크며, 긴 머리카락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그냥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뿐 전혀 아는 얼굴이 아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사람이 전혀 있을 리 없는 동네다. 이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아는 척 했다. "어머, 얼굴에 복이 아주 많아 보이세요..

카페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냐

며칠 전, 차를 타고 가던 중 면 소재지를 지나게 되었다. 면 소재지답게 아직도 '다방' 간판이 여럿 보였고, 낯설게도 이디야 카페가 있었다. 그 옆엔 개인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를 겸한 작은 카페도 눈에 띄었다. "이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다방이랑 카페 중 어디를 가실 거 같아?" "시골이니까 다방에 가지 않을까? 달걀 노른자 동동 띄워주는 쌍화차 마시러 다방 가시겠지" 노른자 동동 띄워주는 쌍화차를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지레짐작으로 대답하는 아이들. 그렇다고 조사를 해 볼 수도 없는 일, 그날의 짤막한 대화는 그렇게 심드렁하게 지나갔다. 오늘은 딸내미가 좋아하는 떡갈비를 사러 시장에 갔다. 'TV에 소개 되었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가게. 그 명성답게 항상 손님이 많다. 본격적으로 장 보기 ..

시집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제2의 고향, 제2의 인생... 제1이 아닌 '제2의 ㅇㅇ'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고백이 아닐까? 삶의 터전이든, 직장이든, 환경이든, 건강이든... 삶의 변화로 인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쨌든,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언제든 제2의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질문: 제2의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는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명대사,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는가?"... 딱 그 느낌으로 읽어주세요^^ 답변: 열심히 꼼지락거리며 햇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비록 2만 개쯤 되는 신발을 신고 있지만 말이에요. 오늘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갔어요. 며칠 전부터 가려고 했는데 비가 내린다는 핑계로 오늘에서야 비로소 가게 된 거죠. '부지런한 나를 칭찬해~' ..

임태주 시인 '어머니의 편지'

가끔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치 나의 정신세계까지 들여다보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관련 영상들이 뜨기 때문이다. 오늘 우연히 접한 유튜브는 한번 보고 지나치기에 너무 아까워서 한 번 더 읽는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적어보려 한다. 임태주 산문집 中 '어머니의 편지'다. 에필로그에 어머니가 직접 쓴 편지가 아니라 평소 하신 말씀을 임태주 시인이 편집하여 쓴 글이라 적었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은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

플라스틱 쓰레기, 고민 돼요

한국인 한 명이 1년 동안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무게는 무려 88kg이라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배달, 포장음식이 무게를 더한 것도 이유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롭게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동네가 있는 반면, 특정 요일에만 분리수거 배출이 가능한 동네도 있다. 우리집은 토요일과 일요일만 배출이 가능하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아침부터 버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기를 제외한 공간이 협소하여 부득이 주차장 서너 칸을 더 사용한다. 다시 말해 주차된 차량이 빠져나간 후부터 분리수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눈치껏 빠져나간 차량들로 인해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 버릴 수 있다 보니 토요일 아침에 1박 2일 일정으로 집을 비우게 되면 분리수거 날짜를 놓치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엉터리 같은 기억력을 되짚어보자면, 오래전에 읽은 글인데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요즘 나도 나를 못 믿는다. 내용인즉슨, 어르신들이 느지막이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 그림 전시회를 하거나 발표회를 하는 내용이었다. 70대 어르신이 그 연세에 그림을 배워 90대에 전시회를 했다는 이야기, 70대에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젊은이들(70대보다는 젊은)에게 훌륭한 메시지를 주었다. 그야말로 평생 교육이다. 친정아버지는 서예를 꾸준히 배우고 계신다. 안타깝게도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 번도 전시회에 간 적 없다. 서예 대전 사진을 찍어서 딸에게 자랑하시는 아버지에게 '최고'를 뜻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축하 인사를 전했을 뿐... 몇 년 전부터는 우크렐레를 ..

1화 - 그깟 콩나물이 뭐라고...

2015년 2월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아들, 딸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덜 힘들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루커우 공항에 내리기 전부터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심장이 멎을 것 같았는데 살다 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대학생이었던 아이들은 휴학을 하고 중국행에 기꺼이 동참했다. 내가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기도 했지만... 중국 발령받고 회사에서 마련해 준 집에 도착했으나, 약 한 달 전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출국할 때 가지고 간 트렁크에 든 옷가지며 약간의 비상식량이 전부였다. 우리나라 아파트 35평 정도 되는 중국 사택은 특별할 것 없는 일반 아파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 일반 아파트는 특..